판터 D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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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터 D 전차
  • 유진우 기자
  • 승인 2020.06.1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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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양산차량인 D형의 참혹한 실전

  1943년 초, 하리코프에서 소련군을 궤멸시키고 어느 정도 전선을 정리한 독일군은 쿠르스크 일대에 형성된 돌출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양측 모두 적잖은 전력을 소모한 상태였기에 재정비가 필요했지만 차후 공세를 누가 먼저 시작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독일군은 1943년의 차기 공세를 이 곳 쿠르스크의 돌출부를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준비에 착수했는다.

  소련의 경우 대량의 T-34/76과 KV-Ⅰ을 생산해 배치할 수 있던데 반해 독일은 갓 배치되기 시작한 Ⅵ호 전차 “티거”는 둘째 치고 1942년 12월부터 생산에 돌입한 판터 D형이 아직 충분히 배치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다.

  판터 시리즈의 최초 양산형인 D형은 만( MAN )사가 도면에 A형으로 기입했음에도 불구하고 D형으로 명명된 좀 독특한 호적을 지닌 차량이다.

판터 D 전차 (사진: 디펜스 투데이)
판터 D 전차 (사진: 디펜스 투데이)

D형은 만( MAN )사에서 242대, 다이믈러 벤츠에서 250대, 헨쉘 130대, MNH 220대로 총 842대가 생산되었다.
  중량은 44.8톤으로 원래의 36톤보다 8.8톤이 초과되었지만 이는 보다 두터운 장갑과 70구경장 75mm 전차포의 탑재 등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판터 D형은 1942년 12월부터 생산에 착수할 예정이었지만 당장 시설 정비를 비롯한 제반 작업이 밀리다보니 결국 1943년 1월말까지 출고된 차량은 겨우 3대에 불과했다.

판터 D 전차 (사진: 디펜스 투데이)
판터 D 전차 (사진: 디펜스 투데이)

더 큰 문제는 이 차량들로 주행 시범을 실시한 결과 문제점이 대거 발견되었다는 것으로 하루라도 빨리 판터 전차를 투입해야 하는 독일 육군 병기국의 독촉까지 겹치면서 산고를 제대로 치르게 되었다( 무엇보다 판터 D형 수령부대로 갓 편성된 제51, 52 전차대대는 5월 말에야 그라펜베어 훈련장에 모든 전차를 집결시킬 수 있었지만 전차병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신출내기였고 지휘관들 역시 전투경험이 적었다 )

  문제는 무려 50가지나 되는 문제점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로 이것이 생각만큼 쉽게 해결된다는 것은 처음부터 곤란했다는 점이다.

  판터 D형에서 발견된 문제점을 살펴보면 우선 포탑을 회전시킬 때 조종수 및 무전수의 해치에 걸려버리는 웃지 못할 경우인데 이는 포탑 모서리 부분을 비스듬하게 3cm 가량 절단해냄으로써 해결했다.

  두 번째는 주포인데 부각이 -7.5° 이하가 되는 경우 조준기가 포탑 내부의 주포 거치부에 충돌해 손상을 입게 되자 결국 포탑 전면에 강판을 용접해 이 이상 포신을 내리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판터  D 전차 (사진: 디펜스 투데이)
판터 D 전차 (사진: 디펜스 투데이)

 이렇듯 50가지나 되는 문제점들로 인해 판터 전차의 생산은 초반부터 비틀거렸는데 당장 공세를 준비하는 독일군 입장에서는 한 대라도 더 많은 차량을 필요로 했기에 일단 생산해놓고 나서 문제점을 해결하자는 결론이 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1943년 4월까지 생산된 판터 D형을 병기국 제6과의 지시에 따라 데마그사로 보내 개수작업을 실시했는데 중요 공정을 살펴보면 우선 연료탱크를 재용접( 앞서 언급한 문제점을 살펴보시길 ), 변속기와 조향장치를 신형으로 교환, 브레이크 기단부 강화, 전차장 해치인 “큐폴라”에 TSRI 잠망경을 신설, 주포 조준기 거치부 강화, 동축 MG 34 기관총 탄피배출구 위치 변경, 동축 기관총 발사 케이블 직경을 2.5mm로 강화함과 동시에 발사 페달 위치 변경, 연락용 측면 해치와 포탄 후부의 탈출용 해치의 힌지축 강화, 탈출용 해치 개방 위치에 해치 고정구 신설 등이었다.

판터 D 전차 (사진: 디펜스 투데이)
판터 D 전차 (사진: 디펜스 투데이)

공세를 앞두고 전차 하나가 완전히 애를 먹인 셈이지만 이렇게 개수작업을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훗날 판터 D형은 숱한 기계적 고장을 일으켰다.


  생산이 지속되는 와중에 판터 D형은 추가적으로 개량되었는데 우선 1943년 4월 생산차량에는 두께 8mm의 슈르첸( 사이드 스커트 )을 장착해 소련군의 14.5mm PTRD 1941 및 PTRS 1942 대전차 소총의 공격에 대응했다.


  5월 생산차량은 엔진을 마이바흐 HL210P30에서 HL230P30으로 변경했고 데마그사가 개수한 차량들 역시 그라펜베어 훈련장에서 최종 개수를 실시했다.


  이렇게 하나 둘 문제점을 해결해나가며 신형 전차 판터 D형은 1943년 7월 5일, 쿠르스크 전투를 통해 역사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당시 생산된 200대의 판터 D형은 에리히 폰 만슈타인( Erich Von Manstein ) 원수의 남부집단군 제48 기갑군단 예하 10 기갑여단에 배치되어 전투를 수행했다.

  하지만 이 첫 실전에서 판터 D형은 재앙에 가까운 참패를 맞이하고 말았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디펜스 투데이)

당장 공세 첫날인 7월 5일 하루에만 해도 최초 투입된 판터 D형 중 18시 이후까지 가동 가능한 차량은 겨우 40여대에 불과했던 것!
  나머지 차량들은 소련군의 대전차 화망에 걸려들어 격파되거나 대전차 지뢰를 밟고 주저앉은 경우가 있었지만 대부분 기계적 고장으로 주저앉아버린 비율이 높았던 것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연료탱크 문제로 인해 화재를 일으키는 차량이 속출했고 자동소화장치를 이용해 진화를 했어도 적지 한복판에서 구난전차나 차량으로 회수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전차병들 스스로 수류탄과 폭약을 던져 넣어 자폭시킨 경우가 다수였다.

  아무리 대대적인 개수작업을 실시했다지만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 하늘에서는 소련 공군의 공습이 이어졌다( 1943년 7월, 러시아의 하늘은 더 이상 독일 공군의 전유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
  수일간 내린 폭우로 인해 대지는 진흙탕으로 변해버렸고 전차의 기동은 더욱 어려워졌으니 이런 전차들만큼 손쉬운 공격목표가 없었던 것이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디펜스 투데이)

1943년 7월 16일자 제48 기갑군단 보고에 따르면 가동 가능한 전차가 Ⅲ호 42대, Ⅳ호 56대, 판터 43대, 티거 6대로 이 보고를 근거로 유추하면 최초 투입된 200대 중 20% 정도만 전투가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1943년 8월까지 총 250대의 판터 D형이 생산되었지만 제10 기갑여단의 경우 7월 10일만해도 가동차량이 10여대 남짓했던 점을 감안하면 판터 D형의 초기 생산차량들은 독일 기갑부대의 얼굴에 먹칠을 한 셈이 되었다.

  대신 75mm kwk 42 L/70 전차포를 이용해 티거와 마찬가지로 원거리에서 T-34/76을 격파해 공격력만큼은 우수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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