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부터 1975년까지 도입한 해군 기뢰전 함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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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부터 1975년까지 도입한 해군 기뢰전 함정들
  • 장훈 기자
  • 승인 2022.08.2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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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부설정형 예선)급 소해정

   단천 (JMS-307)정(사진 출처: 해군 본부)

       해군 토성 (JMS-308)정 외부 형상이 다른 차이점이 있어 다른급으로 볼 수 있지만 대전, 통영, 대구, 태백산, 단천정과 1216호형으로 분류된다.(사진 출처: 해군 본부)

        1948년에 납북된 통천정의 모습으로 37mm 고사포가 설치되어 있다.(사진 출처: 산토끼님)

  대전급은 구 일본 해군의 부설정형 예선(Tug Minelayer / 雑役船 -曳船 (敷設艇型))으로 배수량 150, 200, 420톤급까지 총 세 가지 형태로 1930년대부터 수백 척이 건조되었고 패전 후 건조가 중단되었다.

부설정형 예선은 예인, 기뢰부설 · 수거, 경비 등 다목적으로 용도였지만 입출항시 접ㆍ이안 혹은 동력이 없는 선박들을 예인하는 주 임무였다.

기뢰 부설은 갑판에 레일을 갖추고 있어 기본적으로 5개를 적재하지만 총 14개의 기뢰를 적재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예선의 선수에는 Type 93 13mm 혹은 Type 96 25mm를 선택적으로 탑재해 항만 경비 임무 혹은 수거한 기뢰를 기관포로 통해 폭파 시키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조선해안경비대가 창설 된 이후 1946년 9월 2척의 LCI급 상륙정의 도입을 시작으로 일본 150톤급 부설정형 예선 公稱第1313號, 公稱第1314號, 公稱第1372號, 公稱第1373號를 인수 부산에서 대전, 통영, 대구, 태백산정으로 명명했다.

이들 선박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승조원이 20여 명이 승선하며, 인수하기 전 운용과정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일본 승조원들로부터 교육 받아야 했기 해당 승조원들을 1개월 동안 잔류시켜 조선해안경비대 인수 요원들은 각 장비에 대한 매뉴얼들을 습득했다.

  인수 후 장비와 수리 부속품을 획득하기 위해 미 군사고문관과 일본으로 갔지만 사용 가능한 장비가 없었기에 수리부속품 일부만 구할 수 있었다.

동형함 12척이 정박해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일본에 주둔한 미군 관계자와 협의로 7척을 인도하기로 합의했다. 1946년 12월부터 1947년 12월까지 획득하면서 이후 먼저 정비가 완료된 2척은 부산에서 두만강(ex- 公稱第1121號), 통천(ex- 公稱第1216號)정으로 명명식을 가졌고 公稱第1009號, 公稱第1269號는 단양, 단천정으로 명명되었다.

마지막으로 인수한 第1門川丸(제1카도가와마루), 公稱第1008號, 公稱第1217號를 토성, 대동강, 덕천정으로 명명했으며 이 중 토성정은 인수 당시 第1門川丸라는 선명과 선수 및 상부 구조 형상이 일부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같은 함정으로 公稱第1216號형으로 분류된다.

  1948년 5월 7일 묵호기지에 배속된 통천정은 동해안 해상경비 중 승조원 사이에 숨어있던 남로당 공작원 2명과 내통한 승조원 1명이 승조원들을 감금 후 속초항으로 납북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1척이 아쉬운 상황에서 경산정 이후로 추가 손실을 입었다.

이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되면서 해군으로 정식 발족되어 해군 함대 목록에 등록되었고 30일 함종 JMS 선체번호 301(대전)부터 310(덕천)까지 부여되었다.

  인수 후 무장으로는 소총과 30구경 경기관총이 전부였지만 선수에는 37mm 대전차포를 탑재 및 M2HB 12.7mm 중기관총을 탑재하는 등 어느 정도의 해군 함정으로 위용을 갖추었다.

제주에는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4ㆍ3사건이 발생하면서 1948년 10월 19일 육군 제14연대 내의 남로당원들이 반란을 일으킨 ‘여수ㆍ순천’을 진압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후 1950년 5월 37mm 대전차포에서 40mm 기관포로 대체되면서 대수상전과 공격 지원 임무에서 화력 증강되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8월부터 서해상과 남해상에서 각종 발동선, 화물선, 각종 범선, 소형발동선들을 격침, 나포, 격파 및 파손시키는 등의 전과를 세웠고 통영상륙작전, 덕적도 탈환작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302, 303, 306, 307)에서 공격부대로 참가했다.

이후 여수 및 고흥반도 소탕작전, 목포상륙작전, 진남포  철수작전, 옹진ㆍ연백지구 피란민 철수작전에서 해주ㆍ인천 근해 봉쇄작전 및 옹진지구전투 해상지원사격(단양(306)정), 제2차 인천상륙작전, 전략도서 확보를 위해 상륙작전, 서해도서 교동도ㆍ백령도ㆍ석도 확보작전에서 활약을 보였다.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되면서 함종은 JMS에서 AMC로 재분류되면서 해상경비 작전에도 투입되었다. 10월에 퇴역한 6척의 소해정은 무장을 탈거 후 내무부 치안국 경비과 소속(해양경찰 전신)에 양도되어 301정은 견우호, 302정은 칠성호, 303정은 은하호, 304정은 화성호, 307정은 금성호, 309정은 직녀호로 명명되었다.

  토성정과 덕천정은 1956년 3월까지 운용하다가 퇴역 및 해군 목록에서 제적되었고 이후 덕천정은 수로 측량함으로 재분류되어 복귀했으며 1970년 6월 5일 연평도 근해 공해상에서 승조원 20명과 함께 납북 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원

배수량
경하 156톤 / 만재 180톤
크기
38.5m/5.6m/2.8m
승조원
20명
추진
800마력 디젤엔진 x2
속도
14 노트
무장
37mm포 x1(1950년 5월 제거)
Mk-3 40mm 기관포 x1(1950년 5월 교체)
Mk-4 20mm 70구경 기관포 x2(1950년 5월 탑재)
M2HB 12.7mm 중기관총 x2
레이더
SO-8 대수상 레이더(토성정)

보유함

함명
함종
함번
인수
퇴역(비고)
일본명
대전
JMS/AMC
301
1946년 10월 9일
1953년 10월 20일
公稱第1313號
통영
JMS/AMC
302
公稱第1314號
대구
JMS/AMC
303
公稱第1372號
태백산
JMS/AMC
304
公稱第1373號
두만강
JMS
305
1946년 12월 23일
1950년 6월 29일(오인포격 침몰)
公稱第1121號
단양
JMS
306
1947년 3월 30일
1951년 5월 5일(기뢰접촉 침몰)
公稱第1009號
단천
JMS/AMC
307
1953년 10월 20일
公稱第1269號
토성
JMS/AMC
308
1947년 5월 15일
1956년 3월 15일
第1門川丸
대동강
JMS/AMC
309
1953년 10월 20일
公稱第1008號
덕천
JMS/AMC
310
1956년 3월 15일
公稱第1217號
통천

1947년 12월 23일
1948년 5월 7일(납북)
公稱第1216號

강진(YMS-1)급 소해정

   1950년 해군공창에 정박한 구월산 (YMS-512)정 그 옆에는 의장공사 중인 제2충무공함(사진 출처: 산토끼님)

   1950년 10월 원산상륙작전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여도근해서 소해작전 중 기뢰접촉으로 폭발되는 공주 (YMS-516)정(사진 출처: 미 해군)

  강진급은 미 해군 YMS-1급 보조 발전기 기뢰 소해정으로 1941년부터 1943년까지 Mk.I(1 ~ 135)/II(136 ~ 445)/III(446 ~ 481)로 분류되어 총 561척이 건조되었다. 561척 중 80척은 영국을 지원하기 위해 건조 되었고 그 중 일부는 동맹국인 캐나다와 프랑스 해군에 임대로 공여되었다. 미 해군은 1946년 퇴역 및 개조되어 함급이 재분류되었고 상당수가 해외에 원조 계획으로 공여되었다.

  조선해안경비대는 1947년 1월부터 8월까지 총 17척을(미 해군이 운용한 14척(Mk.II), 영국 해군이 운용하다 미국에 반환한 3척(Mk.I)) 무상으로 공여 받았다. 이미 퇴역 한 함정으로 무장(76mm 함포, 20mm 기관포, 폭뢰) 및 소해장비들이 제거된 상태로 무장으로는 소총과 30구경 경기관총이 전부였으며 1948년 1월 Mk.I 1척을 추가로 공여 받아 총 18척을 보유했다.

  1948년 2월 20일 맥아더 라인 경비 임무 수행 중 월선한 일본어선 1척을 나포하여 예인 중 어선이 암초에 걸리자 다른 구조정을 찾으러 나서다 어선이 암초에서 벗어난 후 도주하자 추적을 포기 한 경산정은 비양도 투묘 정박 중 돌풍으로 인해 21일 좌초되면서 구조가 불가능 하자 현장에서 해체되면서 전력 손실을 입었다. 5월 15일 묵호에서 경비 임무 중 고원정의 승조원 일부가 함상반란을 일으켜 강제 월북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해군으로 정식 발족되어 17척이 해군 함대 목록에 등록되었고 30일 함종 YMS 선체번호 501(금강산)부터 518(용궁/고성)까지 부여되었다. 인수 후 무장으로는 소총이 전부였지만 선수에는 37mm 대전차포를 탑재 및 20mm 70구경 기관포를 탑재하는 등 어느 정도의 해군 함정으로 위용을 갖추었다. 1949년 10월 25일 대한해운공사의 운남호를 인수하여 고령으로 명명 선체번호 515를 부여했다.

  해군 창설한지 다음해인 1949년 2월 24일 가야산 (YMS-511)정이 거문도 근해에서 좌초로 침몰했으며, 3개월 후인 5월 11일 강화 (YMS-508)정은 포항에서 경비 임무 중 부장이 정장과 정대사령(현재 편대장)을 사살하고 월북하는 사건으로 2척의 YMS을 추가적으로 잃었고 특히 무장이 탑재된 함정이 월북한 것은 첫 사건이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가평정이 옥계에서로 두 차례로 통해 북한과 교전 했으며, 오전 7시 북한 경비정과 교전 오후 3시 상륙하고 있는 북한군의 상륙정 1척을 격파 및 발동선 1척을 나포로 통해 해군의 첫 승전보이다. 백두산함의 지휘하에 구월산, 고성정은 대한해협해전서 화력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수리 과정으로 통해 37mm 대전차포에서 40mm 기관포로 대체되면서 대수상전과 공격 지원 임무에서 화력 증강되었다.

  8월부터 서해상과 남해상에서 적 기범선, 각종 발동선, 화물선, 각종 범선, 소형발동선들을 격침, 나포, 격파 및 파손시키는 등의 전과를 세웠다. 8월 18일 통영상륙작전에서 퇴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맡았던 개성 (YMS-504)정과 구월산 (YMS-512)정이 퇴각하고 있는 3척의 목선을 발견 후 격침 8월 20일 김천(513)정은 영흥도탈환작전에서 상륙작전에 참가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YMS-501, 502, 503, 510, 512, 513, 515)에서 공격부대로 참가했다. 이후 여수 및 고흥반도 소탕작전, 진남포  철수작전, 옹진ㆍ연백지구 피란민 철수작전에서 해주ㆍ인천 근해 봉쇄작전, 제2차 인천상륙작전, 전략도서 확보를 위해 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북한이 매설한 소련제 계류, 부유, 감응, 자기기뢰에 아군 함정들의 피해를 입자 소해작전에 투입되지만 공여 받기 전 소해장비들이 제거된 상태였기 때문에 1950년 9월 가평 (YMS-509)정, 10월 공주 (YMS-516)정은 기뢰제거 중 기뢰접촉으로 침몰하면서 이후 지속적인 기뢰에 의한 사고로 소해전에 대한 인식이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0월 23일 6척의 소해정(YMS-501, 502, 503, 507, 513, 514)으로 이뤄진 제1소해전대를 창설 10월 26일부터 1951년 4월까지 YMS 12척을 일본 사세보에 파견시켜 미 해군의 지원을 받아 소해전술 교육과 함께 소해장비들을 탑재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그 해 9월까지 총 200회 이상의 소해작전 임무 수행과 해상경비 작전에도 투입되었다. 이후 소해정들은 1953년 9월 10일 함대 개편으로 통해 제6소해전대에 배속되었다가 1955년 3월 1일 다시 함대를 개편 후 31전대에 배치되었다. 

  정전 이후 13척의 소해정 중 노후화가 심했던 9척은 1955년부터 1959년에 퇴역 및 폐함으로 조치되었고 폐함된 디젤엔진을 1960년 10월 대여 방식으로 민간에 매각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이 사건으로 더 철저히 감시가 이뤄졌다. 그 후 남은 4척에 대해서도 1962년부터 1974년까지 퇴역 및 해군 목록에서 제적되어 이후 고철로 매각되거나 표적함으로 활용되었다.

제원
배수량
270톤
크기
41.45m/7.62m/2.44m
승조원
43명
추진
CODAD 방식
General Motors 8-268A 디젤엔진
2축 추진
속도
최대 13 노트 / 경제 8 노트
무장
37mm포 x1(전쟁 발발 후 제거)
 Mk-3 40mm 기관포 x1(전쟁 발발 후 교체)
M2HB 12.7mm 중기관총 x2
Mk-4 20mm 70구경 기관포 x2(전쟁 발발 후 탑재)
장비
계류기뢰 소해구
음향기뢰 소해구
(미개조분 제외)

보유함

함명
함종
함번
인수
퇴역(비고)
미 해군((B)영국 해군 임대)/(대한해운공사)
금강산/강진
YMS
501
1947년 4월 6일
1959년 6월 15일
USS YMS-354
경주
YMS
502
1962년 5월 10일
USS YMS-358
광주
YMS
503
1974년 1월 21일
USS YMS-413
개성
YMS
504
1947년 5월 10일
1955년 10월 15일
USS (B)YMS-6
김해
YMS
505
1956년 3월 15일
USS YMS-356
강계
YMS
506
USS YMS-392
강릉
YMS
507
1959년 6월 30일
USS YMS-463
강화
YMS
508
1947년 8월 6일
1949년 5월 11일(월북)
USS YMS-245
가평
YMS
509
1950년 9월 28일(침몰)
USS YMS-220
강경
YMS
510
1963년 4월 30일
USS YMS-330
가야산
YMS
511
1949년 2월 24일(침몰)
USS YMS-423
구월산
YMS
512
1956년 3월 15일
USS YMS-323
김천
YMS
513
1968년 2월 28일
USS YMS-258
길주
YMS
514
1947년 8월 30일
1959년 3월 15일
USS (B)YMS-5/2005
경산

1948년 2월 21일(침몰)
USS (B)YMS-18/2018
고령
YMS
515
1949년 10월 25일
1959년 5월 30일
USS (B)YMS-55/2055(운남)
공주
YMS
516
1947년 1월 2일
1950년 10월 18일(침몰)
USS YMS-148
고원

1947년 8월 30일
1948년 5월 15일(월북)
USS YMS-473
용궁/고성
YMS
518
1948년 1월 14일
1955년 10월 15일
USS (B)YMS-8/2008

금화(YMS-1)급 구형 연안 소해정

   1959년 해군 기지 인근 해역에서 소해훈련을 준비 상태인 고창 (MSC[O]-521)정(사진 출처: 미 해군)

  금화급은 미 해군의 YMS-1급 구형 연안 소해정(MSC[O] · Coastal Minesweeper (Old))으로 1946년에 퇴역하여 예비함으로 전환되었다가 YMS-1급 58척을 1947년 재취역 시키면서 AMS(Motor Minesweeper)으로 재분류와 함께 함명도 추가로 명명되었다. 1950년 6.25 전쟁에서 UN군으로 참전하여 북한이 해역에 부설한 소련제 계류, 부유기뢰를 제거하기 위해 소해작전에 투입되었다. 

  1955년 2월 48척의 함정은 AMS에서 MSC[O]로 재분류되면서 미국으로부터 상호 방위 계획으로 제7 태평양 함대 소속 USS Curlew, USS Kite, USS Mockingbird정을 1956년 1월 6일 진해 해군기지에서 미 해군으로부터 공여 받았다.

  해군은 각각 금화 (MSC[O]-519), 김포 (MSC[O]-521), 고창 (MSC[O]-522)으로 명명되어 한국 함대 31전대에 배속되었다. 3척의 MSC[O] 소해정은 소해, 부유, 음향기뢰에 대해 처리가 가능했지만 자기기뢰 처리가 가능한 소해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았으며 비(非)자성체 공법은 1950년 초부터 건조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해당 기뢰에는 취약했다.

  1959년 8월 비(非)자성체 공법과 자기기뢰 처리가 가능한 장비를 갖춘 3척의 MSC-268(이하 금산)급을 도입하면서 MSC[O]급 소해정의 유일한 장점인 기뢰전 능력은 금산급에도 갖추고 있어 공동으로 소해작전 임무 수행이 가능해졌다.

  MSC[O]형 소해정은 여러 차례의 각종 연합 소해훈련 등 참가했으며 노후화 및 기뢰전 능력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1975년 9월 금화정이 먼저 퇴역 했으며, 1977년 9월 2척의 김포, 고창정도 퇴역하면서 해군 함대 목록에서 제적되었다. 한동안 군수사 부두에 계류되어 실습함으로 전환되었다가 이후 고철로 매각되거나 표적함으로 활용되었다.

제원
배수량
270톤
크기
41m/7.5m/2.4m
승조원
45명
추진
CODAD 방식
General Motors 8-268A 디젤엔진 x2
2축 추진
속도
15 노트
무장
Mk-20 20mm 70구경 쌍열포 x1
레이더
AN/SPS-10B 대수상 레이더
장비
계류기뢰 소해구
음향기뢰 소해구

보유함

함명
함종
함번
인수
퇴역
미 해군
금화
MSC[O]
519
1956년 1월 6일
1975년 9월 15일
AMS/MSC[O]-8 USS Curlew
김포
MSC[O]
520
1977년 9월 15일
AMS/MSC[O]-22 USS Kite
고창
MSC[O]
521
AMS/MSC[O]-27 USS Mockingbird

금산(MSC-268)급 연안 소해정

   소해훈련을 마치고 입항중인 금곡 (MSC-525)정(사진 출처: 미 해군)

금산급은 미 해군의 MSC-268급은 연안용 목적으로 건조된 소해정으로 1958년부터 1959년까지 총 21척이 취역했으며, 당시 미 해군은 원양용 소해함을 운용하고 있었기에 바로 대한민국을 포함한 총 8개국에 공여되었다. 선체는 YMS-1급과 같이 목제로 사용되었지만 1956년에 도입한 MSC[O] 금화급과 달리 비(非)자성체 공법이 들어가 있으며 기뢰 탐지 소나를 갖추고 있다. 

1959년 8월 미국으로부터 상호 방위 계획으로 롱비치에서 USS MSC-284, 285, 286정을 인수해 금산 (MSC-522), 고흥 (MSC-523), 금곡 (MSC-525)으로 명명되어 귀국 후 한국 함대 31전대(1986년 제5성분전단 제52기뢰전대로 개편)에 배속 및 한국 해군으로 귀속되어 함대 목록에 편입되었다. MSC-268급은 신규함정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해군으로서는 최신 소해함이자 자기기뢰를 제거, 자기 케이블 소해장비를 갖추고 있어 사실상 제대로 된 소해함이다.

6.25 전쟁에서 기뢰로 주요 항만이 봉쇄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최단 소해 항로를 관리하면서 빠른 시간 내에 주요 항구를 개항하기 위한 설정한 항로이며 주기적으로 주요 항만의 최단 소해 항로에 대한 탐색을 실행했다. 소해작전 외에도 1967년 해군 DE 충남함과 충돌로 침몰한 여객선 한일호 수색작업을 시작으로 1993년까지 격침된 간첩선과 정원 및 과적 초과로 침몰 한 여객선 서해훼리호를 소나로 탐색하여 인양 작업에 도움을 주었다.

  급산급은 유리 섬유 강화 플라스틱 선체의 소해함이 등장하기까지 목제와 비(非)자성체를 접합시킨 선체로 통해 성능은 우수했으며 함령 및 노후화로 2003년 한국형 소해함인 양양급 기뢰 탐색 소해함 2, 3번함의 취역과 함께 대체되어 퇴역 및 해군 함대 목록에서 제적되었고 한동안 군수사 부두에 계류되어 실습함으로 전환되었다가 이후 고철로 매각되었다.

제원
배수량
270톤
크기
41m/7.5m/2.4m
승조원
45명
추진
CODAD 방식
General Motors 8-268A 디젤엔진 x2
2축 추진
속도
14 노트
무장
Mk-20 20mm 70구경 쌍열포 x1
레이더
항법 레이더
소나
UQS-1 기뢰 탐지 소나
장비
계류기뢰 소해구
음향기뢰 소해구
자기기뢰 소해장비

보유함

함명
함종
함번
인수
퇴역
미 해군
금산
MSC
522/551
1959년 8월 30일
1999년 12월 30일
MSC-284
고흥
MSC
523/552
2000년 3월 1일
MSC-285
금곡
MSC
525/553
2001년 4월 17일
MSC-286

비봉(MSB형)급 소해정

  비봉정은 미 해군의 MSB(Minesweeping Boats)형 소해정은 항만용으로 목적으로 1946년부터 1956년까지 총 53척이 건조되었고 1946년에 건조된 4척은 육군이 주문한 것으로 1949년 해군에 이관되었다. MSB 소해정은 1960년 1호정부터 4호정까지 먼저퇴역 했으며, 1952년 미 해군 주문하여 건조된 것은 베트남전 이후로 퇴역했다.

  미국으로부터 상호 방위 계획으로 1962년 MSB-2정을 인수 후 비봉 (MSB-1)정으로 명명되어 한국 함대 31전대에 배속 및 한국 해군으로 귀속되어 함대 목록에 편입되었다. 인수 함정은 1946년 미 육군이 주문한 것으로 미 해군에서 1960년에 퇴역한 소해정이다. 

  당시 같은 함명을 가지고 있던 LST의 비봉은 북한산 봉우리 능선을 가르키며 소해정의 비봉은 해군기지에 인접한 지역 명을 딴것으로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위치한 비봉동을 말한다.

  해군에서 운용했던 소해정중 가장 작은 규모였으며 1970 ~ 1980년대에 퇴역 한 것으로 보이며 한동안 군수사 부두에 계류되어 실습함으로 전환되었다가 이후 고철로 매각되었다.

제원
배수량
44톤
크기
17.5m/4.80m/1.30m
승조원
6명
추진
CODAD 방식
디젤엔진
2축 추진
속도
12 노트
장비
음향기뢰 소해구

보유함

함명
함종
함번
인수
퇴역
미 해군
비봉
MSB
1
1962년 3월 28일
확인 불가
USS MSB-2

남양(MSC-294)급 연안 소해함

   1980년대 진해 해군기지내에서 촬영된 1호함 남양 (MSC-555)함(사진 출처: 플리커)

   1975년 9월 최종 도입 분 1척인 영동 (MSC-529)함(사진 출처: 미 해군)

남양급은 미 해군의 MSC-294급 연안 소해함으로 1963년부터 1978년까지 32척이 취역했으며 대한민국을 포함한 총 7개국에 공여되었다. 1959년에 3척을 도입한 금산(MSC-268)급과 마찬가지로 연안용 목적으로 건조되었다. 금산급은 정으로 남양급은 함으로 지칭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상호 방위 계획으로 1963년 9월과 10월에 보스턴에서 USS MSC-295, 296함을 공여 받아 남양 (MSC-526), 하동 (MSC-527)함으로 명명했으며, 귀국 후 한국 함대 31전대(1986년 제5성분전단 제52기뢰전대로 개편)에 배속 및 한국 해군으로 귀속되어 함대 목록에 편입되었다. 1968년 보스턴에서 MSC-316함을 삼척 (MSC-528)함으로 명명 1975년 최종 도입분은 필라델피아에서 MSC-320, 321함을 각각 영동 (MSC-529), 옥천 (MSC-530)함으로 명명했다.

순차적으로 전력화 된 5척의 소해함은 적의 기뢰로 주요 항만이 봉쇄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최단 소해 항로를 관리하면서 빠른 시간 내에 주요 항구를 개항하기 위한 설정한 항로이며 주기적으로 주요 항만의 최단 소해 항로에 대한 탐색을 실행했다. 소해작전 외에도 격침된 간첩선을 소나로 탐색하여 인양 작업에 도움을 주었다.

1980년대부터 소나 교체 사업이 진행되면서 남양함을 제외한 4척의 소해함은 기존에 운용하고 있던 AN/UQS-1 기뢰 탐지 소나에서 영국 GEC-Marconi(현 Thales Underwater Systems)사의 Type 2022 기뢰 탐지 가변 심도 소나로 교체되었다. 이 과정에 기존 항법 레이더에서 레이시언사의 대수상 레이더로 교체했다. 

남양급은 유리 섬유 강화 플라스틱 선체의 소해함이 등장하기까지 목제와 비(非)자성체를 접합시킨 선체로 통해 성능은 우수했으며 함령 및 노후화로 2003년 한국형 소해함인 양양급 기뢰 탐색 소해함 2, 3번함의 취역과 함께 대체되어 퇴역 및 해군 함대 목록에서 제적되었고 한동안 군수사 부두에 계류되어 실습함으로 전환되었다가 이후 고철로 매각되었다.

제원
배수량
375톤
크기
44m/8m/2m
승조원
39명
추진
CODAD 방식
General Motors 8-268A 디젤엔진 x2
2축 추진
속도
14 노트
무장
Mk-20 20mm 70구경 쌍열포 x1
레이더
항법 레이더
소나
AN/UQS-1 기뢰 탐지 소나(개량 전)
Type 2022 기뢰 탐지 가변 심도 소나(개량 후: 남양함 제외)
장비
계류기뢰 소해구
음향기뢰 소해구
자기기뢰 소해장비

보유함

함명
함종
함번
인수
퇴역
미 해군
남양
MSC
526/555
1963년 9월 7일
2003년 7월 31일
MSC-295
하동
MSC
527/556
1963년 10월 14일
2003년 12월 29일
MSC-296
삼척
MSC
528/557
1968년 6월 20일
2002년 4월 30일
MSC-316
영동
MSC
529/558
1975년 9월 1일
2003년 12월 29일
MSC-320
옥천
MSC
530/559
MSC-321

풍도(LSM-1/대초)급 상륙 기뢰 부설함

   해사 박물관 울름함 축소 모형(사진 출처: 장 훈)

  풍도급은 기존에 운용하고 있던 대초(LSM-1)급 중형 상륙함 풍도 (608)함을 차출 후 개조된 것으로 1977년 상륙 기뢰 부설함(LSML · Landing Ship Minelayer)으로 재분류되었다. 비록 개조한 것이지만 해군 최초로 기뢰 부설함을 운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조과정에서 큰 변화는 없지만 격납데크에 기뢰 이동식 레일과 함미에는 투하용 입구를 설치하는 등의 간단한 개수를 거쳤고 제2전단에서 31전대로 배속되어 적의 주요 해역에 공격기뢰를 대량 부설 및 소해전단의 지휘함 그리고 소해함으로서의 초계 임무 수행도 가능하다.

  이후 1956년 10월에 인수한 울릉 (662)함을 추가로 차출하는데 이는 풍도함의 노후화로 인해 대체 함정으로 개수가 완료된 후 1984년 LSML으로 재분류 및 선체번호는 550으로 변경되었다. 풍도함과 마찬가지로 제53상륙전대에서 제52기뢰전대로 배속되면서 풍도함의 임무 수행을 인계받았다.

  상륙 기뢰 부설함은 여러 차례의 각종 연합 소해훈련 등 참가했으며 1997년 초까지 울릉함이 해군의 유일한 기뢰 부설함이었고 한국형 기뢰 부설함 MLS-1 사업으로 자동 기뢰부설 장치를 갖춰 건조된 원산 (MLS-560)함이 실전 배치면서 한 동안 같이 운용되었다.

  LSML는 수동식 형태의 기뢰 부설방식으로 현대전에는 부적합한 함정이었기 때문에 실습함 혹은 초계 임무 용도로 운용되었고 노후화로 1997년 12월 퇴역 및 해군 함대 목록에서 제적되었다. 한동안 군수사 부두에 계류되어 예비함으로 전환되어 있다가 이후 고철로 매각되었다.

제원
배수량
경하 520톤 / 만재 1,095톤
크기
62m/10.5m/2.5m
승조원
48명
추진
CODAD 방식
Fairbanks Morse(model 38D81/8X10) 디젤엔진 x2
2축 추진
속도
최대 13 노트 / 경제 12 노트
무장
Mk-1 40mm 56구경 쌍열포 x1
Mk-4 20mm 70구경 기관포 x4
계류, 부설기뢰 x40 ~ 50발
레이더
항법 레이더
AN/SPS-64 대수상 레이더(개량 후)
Mk-51 사격 통제 레이더

보유함

함명
함종
함번
인수
개수 완료
퇴역
미 해군
풍도
LSML
608
1956년 5월 3일
1977년
1984년 2월 29일
USS LSM-54
울릉
LSML
550
1956년 10월 18일
1984년
1997년 12월 31일
USS LSM-17

[디펜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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