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터 전차 (5) - 개량형 A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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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터 전차 (5) - 개량형 A형
  • 이치헌 기자
  • 승인 2019.12.0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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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 투입된 판터 개량형 A형

 모욕을 극복하고 최고를 향해, 판터 A형

  쿠르스크 전투가 실패하고 이제 소련군의 반격을 받으며 퇴각하기 시작한 독일군이었지만 판터 전차는 1943년 9월, 개량형인 A형이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초전에 당했던 모욕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1943년 2월 18일, 75mm kwk 42와 포탑을 설계·생산한 라인메탈사는 육군 병기국 제6과와 가진 회의에서 판터 D형의 개량형에 대한 계획을 논의했는데 이것이 판터 A형으로 실현된 것이다.

  판터 A형은 1944년 6월까지 만( MAN )사가 645대, 다이믈러 벤츠사가 675대, MNH사가 830대, 데마그사가 50대를 생산하는 등 총 2,200대를 기록해 G형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여기에서 갑자기 헨쉘이 열외되고 데마그사가 합류했는데 이는 헨쉘사가 1943년 9월까지만 판터 D형을 생산하고 이후 티거 전차의 생산에만 전념하기 위해( 이 녀석도 어지간히 생산시간과 비용, 인력을 잡아먹는 괴물이었으니 ) 판터 전차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헨쉘사는 오직 티거 전차와 판터의 차체를 이용한 구난전차( 우리의 K-1 구난전차와 흡사 )인 베르게 판터만을 생산하게 된다.
  판터 A형과 D형의 차이점은 우선 포탑의 개량이었다.

  A형을 생산하면서 포탑 내부의 좌측에 L4S 유압식 포탑 선회장치를 신설하여 레버를 이용해 조작함으로써 선회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갈수록 치열해지는 전장에서의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생산성 향상이 불가피해졌고 이에 따라 포탑 측면과 전면 장갑판의 접합 방식을 단순화시켜 공정 시간을 단축시켰다.

  또한 시야가 나빠 불평이 많은데다 이반( 러시아에서 가장 흔한 남성의 이름으로 독일군이 소련군을 비하하는 호칭으로 쓰였다. 북한군이 한국군을 “유생역량”, “남조선 간나X끼”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 )들의 대전차 소총 공격에 적잖은 피해를 입게 된 전차장 해치, 일명 “큐폴라” 역시 보다 견고한 주조 방식( 거푸집에 금속을 용해시킨 주물을 부어 제조하는 공법. 판터 A형의 큐폴라는 두께도 D형의 60mm보다 강화한 80mm에 달한다 )의 신형으로 교체해 충분한 강도를 확보한 다음 상부에 잠망경 7기를 설치했다.

  잠망경 덮개 위에는 다시 대공 기관총인 MG 34 거치용 레일이 용접되어 유사시 MG 34 기관총을 거치해 사격할 수 있도록 했다.

  1943년 11월 중순 이후 생산된 A형은 주포 조준기를 TZF 12에서 TZF 12a로 교체했다.

  또한 11월 초순에 출고된 제651호 생산차량부터 전차병들이 활동하는 포탑 내부의 저판( 독일전차는 포탑 자체를 바구니형, 이른바 저판과 포탑을 지주로 연결해 바구니와 같은 형태로 생산함으로써 전차의 포탑이 어느 방향으로 회전하더라도 전차병들이 앉은 채로 제 자리에서 그대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것은 현대의 전차들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구조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런 구조를 채택한 전차는 그렇게 흔한 편이 아니었다 )과 포탑을 연결하는 지주의 강도가 강화되었다.

  그리고 이 A형이 생산되던 시기 독일이 저지른 헛수고, 즉 삽질이라 할 수 있는 찌메리트 코팅이 적용되었다.

  찌메리트 코팅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면 독일이 개발한 자기 흡착식 대전차 지뢰와 유사한 병기를 적군도 사용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차체와 포탑 표면에 유산과 염화바륨 등을 바른 다음 자기 흡착식 대전차 지뢰가 붙지 못하도록 요철 자국을 내는 덧칠기법을 적용했는데 이것이 바로 찌메리트( Zimmerit ) 코팅이다.

  문제는 당시 독일의 적인 소련군은 Zis-3 76.2mm 대전차포를 비롯해 Su-85, Su-100, Su-152 등의 대전차 전력이 충분했기 때문에 굳이 독일과 같은 위험한 모험을 감행할 이유가 충분치 못했고 미군의 경우 보병에게는 M1/M1A1 바주카포가, 기갑부대에게는 구축전차( Tank Destroyer )가 있었기에 더욱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영국군 역시 초탄 장전에 살인적인 힘이 필요하고 반동 역시 만만치 않았지만 나름대로 위력을 발휘했던 “피아트( PIAT, Projector Infantry Anti Tank )”를 보유하고 있었고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티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던 17파운드 대전차포와 같은 신형 대전차 병기들이 있었으니 결국 독일은 애시 당초 적들이 사용할 일도 없었던 전술에 대응하기 위해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책을 범하고 만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 찌메리트 코팅 덕분에 독일전차를 제작하는 모델러들이 50년 이상 골머리를 썩혔고 이 코팅을 잘 표현하기 위해 모델러들의 포럼이나 사이트에는 갖가지 노하우들이 게재됨은 물론 관련 공구들까지 개발되어 판매 중이다.

  여하튼 판터 A형은 예외없이 출고와 동시에 찌메리트 코팅이 적용되었고 궤도에는 동계작전 시 발생할 수 있는 미끄럼 방지기구가 도입되었다.

  이 미끄럼 방지기구는 궤도 5장, 혹은 7장마다 하나씩 부착되었는데 장착할 경우 시속 15km 이상으로 주행할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
  이 11월 생산차량들은 그야말로 개량에 개량을 거듭했는데 엔진 회전수가 조정되어 기존의 3,000RPM에서 2,500RPM으로 하향조정해 엔진에 무리가 가는 것을 방지했다.

  여기에 견인차량이 부족하게 되어 차체 후부에 견인장비 장착용 패널이 설치되었고 실제 이런 식으로 고장난 판터를 동료 전차가 견인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11월 중순 이후 마침내 판터 전차에 적당한 원형 기관총 거치대가 완성되어 MP 40 기관단총 대신 MG 34 기관총을 장착함으로써 돌격해 오는 보병들에 대해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봤자 보병 지원이 없는 전차가 위험한 것은 변함없었지만 )  오늘날 우리가 아는 A형은 사실상 이 시기에 완성된 것으로 12월 생산차량부터는 방어력 향상을 위해 포탑에 설치된 권총 총안이 폐지되는 대신 포탑 상부에 근접방어병기로 ‘S-마인’ 발사기를 신설하기로 결정했지만( 실용화는 1944년 3월부터 ) 일단 장착구만 설치한 후 장갑판으로 덮은 상태로 생산이 지속되었다.

  1944년 1월에 생산된 판터 A형에는 동계 전투를 위해 히터가 설치되었는데 원리는 기관실 좌측에 설치된 라디에이터로부터 공개 배출용 팬을 반대 방향으로 장착해 열기가 기관실과 전차병들의 전투실 사이에 위치한 격벽에 뚫은 구멍을 통해 들어올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이로써 혹독한 겨울이 불어 닥치는 소련 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전차병들에게는 약간의 위안이 되었다.

  문제는 이렇게 공기 배출용 팬을 역방향으로 설치함에 따라 좌측 배기관이 과열되어 이를 예방하기 위해 좌측 배기관 좌우측에 흡기관을 추가 신설했다.

  1944년 4월 11일에는  병기국 제6과가 지령을 통해 현 시점까지 큐폴라에 장비되어 있던 야간 표시기를 폐지할 것을 지시했는데 이는 적외선 야간투시장비의 개발이 시작되면서 하달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적외선 야간투시장비 개발이 상당히 더뎌지면서 덕분에 전차병들이 야간작전에서 적잖은 애를 먹기는 했지만 말이다.

 

전선에서 활약한 판터 A형

  여하튼 판터 A형은 동부전선과 이탈리아 전선, 노르망디 전선에서 활약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독일 연방정부)

이탈리아 전선에서는 1944년 5월 23~24일에 걸쳐 제4 기갑연대 4중대의 판터 전차들이 6대를 손실하는 대신 33대의 미군 전차를 격파했고 8월에는 제26 기갑연대 4중대의 판터 전차 2대가 11대의 소련 전차를 격파하는 전과를 거두는 등 판터 전차는 손실보다 많은 수의 적 전차를 격파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독일 연방정부)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독일 연방정부)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독일 연방정부)

[디펜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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