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터 전차 (1) - 현대 전차의 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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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터 전차 (1) - 현대 전차의 시초
  • 이치헌 기자
  • 승인 2020.06.1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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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최강의 전차이자 현대 MBT의 시초인 판터전차

 제2차 세계대전 최강의 전차, 현대 MBT의 시조, “판터”
  Panzerkampfwagen Ⅴ "Panther" sd.kfz 171

  소련의 T-34와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 최강의 전차이자 현대 주력전차의 시초로 꼽히는 독일의 판터 전차
  티거 못지않은 맹수로서 활약한 판터 전차를 알아보자!!

  인류 역사상 참혹하고도 지루했던 전쟁인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연합군과 독일군 양측에서 개발해 투입한 신병기 전차( Tank, Panzer, 戰車 )는 그 때까지의 전장 환경을 180° 변화시켰다.

  그 중에서도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대량의 전차를 투입해 독일을 압박했고 생산한 모든 전차를 다 합쳐야 30대도 채 안되었던 독일은 결국 연합군에 항복해야 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디펜스 투데이)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 독일이 패전을 당했다고 해도 유럽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한 국가 중 하나이며 기계 공업이 발달한 독일이 순순히 연합군의 요구를 따를 리 없었다.

  언젠가는 독일이 재무장을 하게 될 것이고 그 때는 연합군에 절대 뒤처지지 않는 수준의 군사력을 갖추어야할 필요가 있었기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해외로 연구진과 기술자들을 파견해 필요한 장비의 개발과 연구를 수행했고 전차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디펜스 투데이)

 최초 독일이 개발한 Ⅰ호 전차는 농업용 트랙터라는 위장 명칭을 붙인 상태였고 보다 무장이 강화된 Ⅱ호 전차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기관포 하나 더 추가한다고 해서 전차포를 갖춘 전차의 무장 능력이 발휘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차기 주력전차로서 개발된 Ⅲ호 전차는 등장 당시로서는 나쁘지 않은 상당히 균형 잡힌 성능을 자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급격히 구식화되었고 경쾌한 차체는 도리어 대구경 전차포 탑재 및 장갑 두께 강화 등의 확장성에서 불리했다.  오히려 Ⅲ호 전차를 보조하는 역할로 개발된 Ⅳ호 전차가 대형 차체 덕분에 43, 48구경장 75mm 전차포를 탑재하고 장갑 두께를 강화하는 확장성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독일은 전차의 넓은 포탑 내부 공간으로 전차병의 거주성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임무별로 효율적 배치를 통해 전투 효율을 극대화시키고 우수한 광학 조준장치와 정밀하게 가공된 주포, 고성능 무전기 탑재 등으로 탁월한 명중률과 높은 관통력, 그리고 효율적인 지휘 체계 정립이라는 효율성을 발휘한 반면 아직 제대로 된 주력전차( Main Battle Tank )를 보유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한 독일군이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주력전차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판터 전차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물론 데뷔 자체는 적의 신형 전차 덕분이었지만………  《 판터의 태동기 》  1939년 9월 1일, 독일군의 일방적인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막이 올랐지만 충분한 수의 Ⅲ호, Ⅳ호 전차가 배치되지 못해 기갑부대의 주력전차는 Ⅰ호, Ⅱ호 및 체코제 35(t), 38(t)였다.  이렇듯 불안하게 시작한 폴란드 침공은 다행히 독일군의 획기적인 작전수행과 더불어 교육훈련 수준이 미비하고 전술 운용체계가 현대전에 적합하지 않았던 폴란드군의 내부 문제 등으로 인해 독일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장갑 방어력이 약한 Ⅰ호, Ⅱ호 전차로는 여전히 불안한 것이 현실이었고 실제 폴란드군이 견고한 대전차 방어선을 구축할 경우 이들 전차들이 집단 학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 등 문제점이 적잖이 드러났다.  독일 국방군( Wehrmacht, 베어마흐트 ) 수뇌부로서는 폴란드전의 전훈을 통해 1938년부터 개발 중이던 차기 전차를 기왕이면 지금의 Ⅲ호 전차와 Ⅳ호 전차를 통합한 것으로 했으면 하는 의견을 제시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곧 VK20.01로 이어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VK20은 20톤급 궤도 차량을, 01은 제1안을 의미한다 )  이에 따라 방산업체들은 1939년 10월, VK20.01의 안건에 의거한 육군 병기국의 개발요구에 따라 자신들의 설계안을 제출했다.  당시 육군 병기국이 방산업체들에게 요구한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① 직경이 큰 보기륜을 장비하고 상부의 지지륜을 폐지할 것  ② 토션바식 현가장치를 채택할 것  ③ 크기가 작으면서도 고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형 엔진을 장착할 것  ④ 동력으로 구동되는 반자동 변속기를 장착할 것  ⑤ 신형 조향장비를 장착할 것  이 요구조건에 따라 방산업체들은 설계에 돌입했는데 그 중 다이믈러 벤츠사의 설계안이 양호한 평가로 선정되어 설계와 시험이 진행되었다.  동시에 크루프 역시 기존의 Ⅳ호 전차를 개량한 시제차량을 계획했지만 폴란드전의 전훈에 따라 포기하고 새로운 차체인 VK20.01(K) 계획에 착수했다.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방산업체인 만( MAN )사 역시 VK20.01에 참여했지만 앞서 열거한 양사의 차량과는 달리 병기국의 요구조건에 따라 토션바식 현가장치를 채택했다.  다이믈러 벤츠와 크루프가 육군 병기국의 요구인 토션바식 현가장치 채택을 거부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는데 우선 다이믈러 벤츠는 Ⅲ호 전차에 토션바식 현가장치를 장착해 운용한 결과 차내 용적을 감소시키고 고장이 발생할 경우 교환하기가 어려우며 사격을 위해 정지( 당시 전차들에서 기동간 사격은 꿈과도 같은 일이었다 )할 시 미묘한 진동이 남아 정확하고 신속한 조준이 곤란하다는 것을 들었다.  크루프의 경우 앞서 언급한 차내 용적 문제 외에도 포탑 선회 구동장치 및 차내 탄약고 공간 확보의 어려움을 들어 난색을 표했다.  그렇지만 당시 시대의 흐름은 서서히 토션바식 현가장치가 필수적인 기류였고 이를 거부한 상태로 스프링식 현가장치를 채택하는 것은 자연히 시대에 역류하는 행위였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디펜스 투데이)

그나마 차기 주력전차로서 개발된 Ⅲ호 전차는 등장 당시로서는 나쁘지 않은 상당히 균형 잡힌 성능을 자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급격히 구식화되었고 경쾌한 차체는 도리어 대구경 전차포 탑재 및 장갑 두께 강화 등의 확장성에서 불리했다.

  오히려 Ⅲ호 전차를 보조하는 역할로 개발된 Ⅳ호 전차가 대형 차체 덕분에 43, 48구경장 75mm 전차포를 탑재하고 장갑 두께를 강화하는 확장성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독일은 전차의 넓은 포탑 내부 공간으로 전차병의 거주성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임무별로 효율적 배치를 통해 전투 효율을 극대화시키고 우수한 광학 조준장치와 정밀하게 가공된 주포, 고성능 무전기 탑재 등으로 탁월한 명중률과 높은 관통력, 그리고 효율적인 지휘 체계 정립이라는 효율성을 발휘한 반면 아직 제대로 된 주력전차( Main Battle Tank )를 보유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한 독일군이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주력전차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판터 전차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물론 데뷔 자체는 적의 신형 전차 덕분이었지만………

 

  판터의 태동기 
  1939년 9월 1일, 독일군의 일방적인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막이 올랐지만 충분한 수의 Ⅲ호, Ⅳ호 전차가 배치되지 못해 기갑부대의 주력전차는 Ⅰ호, Ⅱ호 및 체코제 35(t), 38(t)였다.

  이렇듯 불안하게 시작한 폴란드 침공은 다행히 독일군의 획기적인 작전수행과 더불어 교육훈련 수준이 미비하고 전술 운용체계가 현대전에 적합하지 않았던 폴란드군의 내부 문제 등으로 인해 독일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장갑 방어력이 약한 Ⅰ호, Ⅱ호 전차로는 여전히 불안한 것이 현실이었고 실제 폴란드군이 견고한 대전차 방어선을 구축할 경우 이들 전차들이 집단 학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 등 문제점이 적잖이 드러났다.

  독일 국방군( Wehrmacht, 베어마흐트 ) 수뇌부로서는 폴란드전의 전훈을 통해 1938년부터 개발 중이던 차기 전차를 기왕이면 지금의 Ⅲ호 전차와 Ⅳ호 전차를 통합한 것으로 했으면 하는 의견을 제시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곧 VK20.01로 이어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VK20은 20톤급 궤도 차량을, 01은 제1안을 의미한다 )

  이에 따라 방산업체들은 1939년 10월, VK20.01의 안건에 의거한 육군 병기국의 개발요구에 따라 자신들의 설계안을 제출했다.

  당시 육군 병기국이 방산업체들에게 요구한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① 직경이 큰 보기륜을 장비하고 상부의 지지륜을 폐지할 것
  ② 토션바식 현가장치를 채택할 것
  ③ 크기가 작으면서도 고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형 엔진을 장착할 것
  ④ 동력으로 구동되는 반자동 변속기를 장착할 것
  ⑤ 신형 조향장비를 장착할 것

  이 요구조건에 따라 방산업체들은 설계에 돌입했는데 그 중 다이믈러 벤츠사의 설계안이 양호한 평가로 선정되어 설계와 시험이 진행되었다.

  동시에 크루프 역시 기존의 Ⅳ호 전차를 개량한 시제차량을 계획했지만 폴란드전의 전훈에 따라 포기하고 새로운 차체인 VK20.01(K) 계획에 착수했다.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방산업체인 만( MAN )사 역시 VK20.01에 참여했지만 앞서 열거한 양사의 차량과는 달리 병기국의 요구조건에 따라 토션바식 현가장치를 채택했다.

  다이믈러 벤츠와 크루프가 육군 병기국의 요구인 토션바식 현가장치 채택을 거부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는데 우선 다이믈러 벤츠는 Ⅲ호 전차에 토션바식 현가장치를 장착해 운용한 결과 차내 용적을 감소시키고 고장이 발생할 경우 교환하기가 어려우며 사격을 위해 정지( 당시 전차들에서 기동간 사격은 꿈과도 같은 일이었다 )할 시 미묘한 진동이 남아 정확하고 신속한 조준이 곤란하다는 것을 들었다.

  크루프의 경우 앞서 언급한 차내 용적 문제 외에도 포탑 선회 구동장치 및 차내 탄약고 공간 확보의 어려움을 들어 난색을 표했다.

  그렇지만 당시 시대의 흐름은 서서히 토션바식 현가장치가 필수적인 기류였고 이를 거부한 상태로 스프링식 현가장치를 채택하는 것은 자연히 시대에 역류하는 행위였다.

[디펜스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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