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거 1 전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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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거 1 전차 (2)
  • 이치헌 기자
  • 승인 2019.12.1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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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에게 공포의 이미지로 각인된 티거 1 전차

 티거의 실전 배치

(사진: 디펜스 투데이)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된 후 제벨 만수르 공략에 나선 제501 중전차대대 소속 티거 극초기형의 위용 (사진: 독일 연방정부)

비록 완편되지 못한 상태로 투입되었지만 티거 전차는 연합군에게 공포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최초 돌파 전차로 계획되었던 티거는 전면 장갑 102mm, 측면 장갑 80mm, 그리고 강력한 88mm kwk 36 L/56포와 92발의 포탄을 적재해 기존의 돌파 임무 외에도 독일군을 일대 공포로 몰아넣은 T-34와 KV-Ⅰ에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티거가 최초로 실전 데뷔한 곳은 다름 아닌 북아프리카 전선이었다.

  1942년 12월 20일, 튀니지의 레조 디 칼라브리아 항구의 부두에서는 육중한 거체들이 수송선에서 하역되고 있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독일 연방정부)

엘 알라마인에서의 참패로 인해 리비아를 포기하고 튀니지까지 퇴각했던 아프리카 군단 잔존병력들은 난생 처음보는 이 거대한 전차들 앞에 넋을 잃었고 지축을 울리며 서서히 시가지로 진입해 들어가는 이 전차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바로 티거가 북아프리카 땅을 밟았다는 것을  1943년 04월, 하인츠 구데리안 기갑병총감이 하리코프에 주둔한 무장 친위대 제1 기갑사단 “아돌프 히틀러” 예하 티거 중대( 중대장 : 하인츠 클링 SS 대위 )를 방문할 당시 촬영된 사진으로 이 시기는 쿠르스크 공략을 앞둔 시점이라 중장갑을 갖춘 돌파 전력으로서 티거 부대에 거는 기대가 컸다. 의미하는 것이었다.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된 티거I

  북아프리카에 투입된 최초의 티거 부대인 제501 중전차대대는 1942년 05월에 창설되어 아직 완전 편제가 되지 않아 2개 중대에 티거와 Ⅲ호 전차 N형이 혼성 편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앞서 11월 08일, 알제리에 상륙한 미군을 맞아 분투했고 1943년 03월 13일, 비제르타로 투입된 제504 중전차대대 1중대와 합류해 동년 05월 17일까지 총 150대에 달하는 연합군 전차를 격파했다.

  반면 제501 중전차대대의 손실은 베자 지구에서 공병들에 의해 자폭 처리된 7대를 포함, 10대에 불과했으니 연합군이 당황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손실되는 차량에 비해 보충되는 차량의 수는 너무나도 적었고 결국 제501 중전차대대의 잔여 전력과 제504 중전차대대 1중대는 북아프리카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이 과정에서 1943년 04월 21일, 제벨 자파에서 제504 중전차대대 131호 차량이 영국군에 노획되어 영국으로 이송, 보빙턴 전차 박물관의 오랜 복원 작업 끝에 마침내 가동이 가능해져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동되는 티거 전차라는 영예를 얻었다.

  이후 시칠리아에 잔존한 제504 중전차대대 2중대는 보충된 차량을 합쳐 총 17대의 티거를 이용, 상륙한 연합군에 맞서 격전을 치렀지만 결국 단 1대만 살아남아 이탈리아 본토로 퇴각해야 했다.

  하지만 1943년 전반기 연합군과의 전투는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시칠리아의 격전 끝에 이탈리아 본토로 퇴각하는데 성공한 제504 중전차대대 222호 차량 (사진: 독일 연방정부)

하지만 시칠리아 전투에서도 전투에서 격파된 차량은 6대에 불과한 반면 격파한 연합군 전차는 20대에 달했다.

바로 소련군과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1943년 07월, 프로호로프카로 진격하는 무장 친위대 제2 기갑사단 “다스라이히” 소속 기갑척탄병과 티거 초기형 (사진: 독일 연방정부)

이들은 07월 12일, 프로호로프카에서 파벨. A. 로트미스트로프 소장의 제5 친위 전차군의 대군을 맞아 사투를 벌이게 된다.

1943년 01월, 레닌그라드 남동부에 투입된 제502 중전차대대 1중대 소속 티거 극초기형 4대는 습지대라는 지형적인 난제와 더불어 사전에 매복하고 있던 소련군 대전차포의 기습 사격을 받아 투입된 차량 전량을 손실( 중대장차 포함 )하는 피해를 입었다.

 

소련전선에 진가를 발휘하는 티거 전차

  하지만 이후 벌어진 격전에서 티거 전차는 곧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광활한 대지인 동부전선의 전장 환경은 티거에게 기막힌 이점으로 작용했고 1943년 07월 05일에 감행된 쿠르스크 공략에서 티거는 돌파 전차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소련군에게 적잖은 피해를 입혔다.

  특히 북부전선에 투입된 제505 중전차대대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돌파구를 마련해 제9군의 진격을 도왔고 남부전선에 투입된 무장 친위대 제2 기갑군단 예하 3개 중전차중대 역시 소련군의 견고한 방어진지와 전차대에 맞서 활약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아돌프 히틀러” 13 중전차중대 소속 프란츠 슈타우데거( Franz Staudegger ) SS 중사 (사진: 독일 연방정부)

쿠르스크 전투 당시 궤도가 피격되어 기동불능에 처한 상황에서 50대에 달하는 T-34/76과 맞딱뜨린 끝에 이 중 22대를 격파, 기사십자 훈장을 수여받은 무장 친위대 제1 기갑사단 “아돌프 히틀러” 13 중전차중대 소속 프란츠 슈타우데거( Franz Staudegger ) SS 중사

  특히 무장 친위대 제1 기갑사단 “아돌프 히틀러” 예하 13 중전차중대 소속 프란츠 슈타우데거 SS 중사는 궤도가 피격된 상태에서 소련 전차 T-34/76 50대를 맞아 이 중 22대를 격파해 기사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하지만 무장 친위대 제2 기갑군단의 티거 전차병들에게는 더 큰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1943년 07월 12일, 프로호로프카를 향해 진격하던 무장 친위대 제2 기갑군단은 파벨. A. 로트미스트로프 소장이 지휘하는 제5 친위 전차군( 4개 전차 군단과 1개 자주포 연대, 1개 기계화 군단 )을 맞아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당시 프로호로프카에 투입된 티거는 3개 사단의 차량 총합 18대에 불과했고 판터는 단 1대도 없었으니 이들 극소수의 티거와 Ⅲ호, Ⅳ호 전차 및 돌격포, 대전차 자주포, 대전차포 등 무장 친위대 제2 기갑군단이 보유한 모든 장비와 병력이 총동원되어야 했다.

  결국 전투는 소련군이 퇴각하면서 무장 친위대의 전술적 승리로 끝났지만 무장 친위대 역시 이 전투로 진격이 잠시 주춤해졌다.

  1944년 노르망디 전선에서는 무장 친위대 제101 독립 중전차대대의 미하일 비트만 SS 중위의 제2 중전차중대와 칼 롤프 뫼비우스 SS 대위의 제1 중전차중대가 비에흐 보까즈 읍내에서 W.E.J 바비 어스킨 소장의 영국 제7 기갑사단 22 기갑여단 예하 4 런던 의용 기마병 연대를 맞아 격전을 벌여 28대에 달하는 전차와 차량들을 격파하는 전과를 거뒀다.

 

   전선에서의 혹사, 완전편제 전투 불가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보자면 티거는 그야말로 비싼 생산단가와 전선으로의 이동이 불편함에도 그만큼의 진가를 발휘하는 전차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대단히 어두운 단면도 있는 법!

  점차적으로 소련군의 공세가 강화되는 통에 원래 돌파 전차로서 공세 시 요새화된 진지를 격파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첨병이었던 티거는 오히려 전선을 돌파해 후방으로 난입한 소련군을 격퇴시키는 5분 대기조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여기에 1944년 06월 06일,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면서 전선은 동서로 압박되어 독일군은 한정된 장비와 병력으로 싸워야 했고 이런 방어적인 상황의 기동은 티거에게 도리어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제공권이 연합군에게 넘어간 상황에서 티거의 기동은 도리어 연합군 공군의 좋은 표적이 될 뿐이었다.

  또한 워낙 전선이 여기저기서 돌파당하다 보니 티거 전차대는 그야말로 쉴 틈이 없었고 자연 차량의 혹사가 심화되어 기계 고장으로 전투에 투입되지 못하거나 전차병들에 의해 유기된 차량이 속출하면서 대전 기간 중 티거 전차대는 완전 편제로 전투를 치른 경우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베자 지구에서 독일군 공병대에 의해 자폭 처리된 티거 823, 833호 차량 (사진: 독일 연방정부)
(사진: 디펜스 투데이)
격파된 T-34/76 (사진: 독일 연방정부)

독소전 초반 독일군에게 심각한 충격을 안겨준 T-34를 상대로 티거는 강력한 88mm 주포와 전면 방어력으로 맞서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

  88mm 포탄에 피격되면 그야말로 끝장이나 마찬가지였던 셔먼은 워낙 많은 수가 파괴되다보니 대전 중 5만대라는 막대한 양이 생산되었다.

  이 때문에 영국군은 17파운드 대전차포를 탑재한 파이어 플라이를 투입하고 미군 역시 M10, M18, M36 등의 구축전차를 투입함과 동시에 셔먼 전차의 주포 역시 76.2mm로 교체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힘썼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격파된 무장 친위대 제101 독립 중전차대대 334호 차량 (사진: 영국 육군)

무장 친위대 제101 독립 중전차대대는 노르망디에 투입된 4개의 티거 부대 중 하나였지만 치열한 격전 속에 하나 둘 소모되어 결국 제501 SS 독립 중전차대대로 개편되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1944년 06월 13일, 비에흐 보까즈 전투에서 격파당한 무장 친위대 제101 독립 중전차대대 121호 차량 (사진: 영국 육군)

제2 중대장 미하일 비트만 SS 중위의 기습 공격 이후 보병 지원없이 돌입한 제1 중전차중대는 영국 제7 기갑사단의 방어선에 걸려 혹독한 피해를 입고 말았다.

  대전 후반으로 접어들면 연합군 역시 티거에 대응하기 위한 신형 전차와 철갑탄을 배치하기 시작했고 제공권의 상실로 행동의 자유를 제한당한 티거 전차는 점차적으로 전선에서의 우위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투입되면 격파될 때까지 최대한 적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힌 티거 전차는 연합군에게 그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고 종전 후 독일 전차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

  티거 전차는 1944년 08월까지 총 1,354대가 생산되어 국방군 독립 중전차대대와 무장 친위대 독립 중전차대대 등에 배치되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영국 육군)

 신형 순항전차 크롬웰도 티거를 만나면 고철로 변하기 쉬웠다. 비에흐 보까즈 전투 당시 미하일 비트만 SS 중위의 티거에게 일격을 얻어맞고 격파당한 제4 런던 의용 기마병 연대 본부중대 소대장인 크라우즐리 톰슨 중위의 크롬웰 전차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처럼 1,000대 이상이라는 만만치 않은 수가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파괴된 잔해까지 포함해 살아남은 차체는 겨우 6대에 불과하다.

  그만큼 철저하게 파괴당했고 전후 고철 처리에서 살아남은 차량이 적다는 얘기다.

  현재 보빙턴 박물관에서 복원한 제504 중전차대대 131호 차량만이 유일하게 가동 가능한 티거니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지 65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티거는 많은 전사 매니아와 모델러, 리인액터들에 독일 전차부대의 상징으로서 영원히 군림할 것이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영국 육군)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독일 연방정부)
(사진: 디펜스 투데이)
길가에 방치된 티거전차 (사진: 영국 육군)
(사진: 디펜스 투데이)
파괴된 티거전차 (사진: 영국 육군)
(사진: 디펜스 투데이)
티거전차를 둘러보는 소련장교들 (사진: 러시아 국방부)
(사진: 디펜스 투데이)
소련전선의 티거전차와 병사들 (사진: 독일 연방정부)

 영화 속의 티거 전차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개조 티거가 출연한 구소련의 5부작 “유럽의 해방” 중 제1장 “포화의 돌출부”에 출연한 T-44 개조 티거 전차들

  실물에 비해 포탑의 경사가 급하고 차체 높이도 낮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출연한 T-34/85 개조 차량 이전까지 가장 잘 개조된 차량으로 꼽혔으며 2004년작 “몰락( Der Untergang )”에도 출연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이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자유 진영과 공산진영에서는 군비 경쟁과 더불어 또 하나의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으니 바로 전쟁영화가 그것이다.

  특히 공산권 진영의 맹주 소련은 영상물을 이용한 선전 고무 전략의 달인이었고 리얼리즘을 대단히 강조해 최대한 당시의 모습에 가깝도록 재현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 영화를 많이 감상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현재까지 전쟁영화에 출연한 티거 중 실물은 단 1대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 재고 차량이 많은 T-34/85를 기초로 개조한 것들이 많은데 1998년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출연한 스티브 라몬비씨 소유의 T-34/85 개조 “티거”는 상당히 높은 재현도를 보이며 호평을 받았지만 소련 역시 1968~71년에 걸쳐 5부작으로 개봉한 “유럽의 해방”( Освобождение )에서 T-44를 개조한 차량을 대량으로 출연시켰다( 아마 영화 사상 가장 많은 수의 개조 티거 전차들이 출연한 작품으로 부동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

  1990년대 초반에 동구권에서 방출된 T-54/55 전차를 기초로 개조한 티거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재미있는 부분은 동구권 국가인 헝가리에서 개조한 차량이 서유럽에서 개조한 차량보다 주포의 포신 길이나 차체 높이에서 좀더 우위를 점한다는 것이다.

  여하튼 보빙턴 박물관의 오랜 복원 노력 끝에 131호 차량이 가동하게 되었으니 영원히 역사의 유물로 남을 뻔한 티거가 이제는 과거의 활약을 상기시켜주며 독일 전차팬들의 우상으로 기려지기를 바란다.

[디펜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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