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거 2 전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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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거 2 전차 (2)
  • 이치헌 기자
  • 승인 2019.12.1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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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의 전차 티거 II
(사진: 디펜스 투데이)
티거 II 전차의 영국군 (사진: 영국 육군)
(사진: 디펜스 투데이)
불도져로 티거II를 도로에서 밀어내는 모습 (사진: 영국 육군)

 무적의 방어력을 위한 장갑의 강화 

예나 지금이나 무적전차에 대한 환상은 기갑병과에 복무하는 이들의 강력한 염원일 것이다.

  자신에게는 전혀 생채기를 입히지 않으면서도 수십대의 적 전차를 고철로 만들며 전진하는 것을 꿈꾸지 않은 전차병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을 정도인데 당시 수적으로 열세였던 독일 전차병들에게 이러한 희망사항은 마치 발퀴레의 음성과도 같았을 것이다.

  독일 육군 병기국 역시 나날이 격렬해지는 동부전선의 상황에 수는 적어도 질적인 우세만큼은 보다 강화시킬 신형 중전차가 필요했고 이에 따라 주포 못지않게 장갑에 대해서도 세세한 규정을 내렸다.

  우선 장갑판 접합방식은 판터와 마찬가지로 ‘ㄷ’자 형태로 가공한 후 서로 맞물린 다음 용접으로 마감하도록 했다.

  다음은 가장 중요한 두께인데 전체적으로 경사장갑을 적용한 뒤 우선 차체 전면은 150mm, 차체 측면과 후면은 80mm, 차체 상면은 40mm로 규정했다.

  티거의 102mm에 비해 48mm가 더 두꺼워진 셈인데 차이점은 티거가 사실상 수직 장갑판인 반면 차기 중전차는 경사장갑을 적용해 실제 방어력은 150mm를 가뿐히 초월한다는 것이다.

   현실성을 제대로 무시한 포르쉐사의 탈락! 

차기 중전차의 기본 제원이 위와 같이 결정되자 골치아픈 주포 문제 해결로 개발에 급물살을 탄 헨쉘과 포르쉐는 차체 설계에 착수했는데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역시 포르쉐!

  포르쉐사는 티거에서 쓴 잔을 마셨던 VK45.01(P)를 기초로 새로운 45톤 시제차량인 VK45.02(P)를 설계했다.

  이 차량은 서스펜션에서 페르디난트/엘레판트 구축전차와 큰 차이가 없었는데( 어차피 차체가 같았으니 ) 구동체계는 VK45.01(P)와 마찬가지로 엔진으로 발전기를 회전시켜 모터를 구동해 주행하는 방식을 고집스럽게 유지했다.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로서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고 싶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선의 장병들이 운용할 병기의 설계에서 별로 실익이 없는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결코 옳은 처사가 아니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러시아 국방부)

무엇보다 이 구동체계로 인해 여전히 엔진실의 용적이 커져 포탑을 장착할 경우 T-34나 IS와 마찬가지로 차체 전방으로 완전히 치우쳐버려 무게 중심 배분 등 균형 면에서 썩 좋지가 않았다.

  이미 티거 전차 경합에서 이런 방식을 고집스럽게 유지했다가 헨쉘에게 참패한 경험이 있던 터라 포르쉐사의 기술진은 만의 하나를 대비해 페르디난트/엘레판트와 같이 포탑을 차체 후방으로 이동시킨 설계안( VK45.02(P1)으로 구체화된다 )도 마련했다.

  이리하여 포르쉐사의 설계안은 각각 VK45.02(P1), Typ 180과 VK45.02(P2), Typ 181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포탑 위치에 상관없이 이 시제차량은 이미 구동체계( 여담이지만 전기 구동식이다보니 구리는 필수적이었는데 1943년에 이르면 구리 자체의 단가가 너무나도 비싸졌고 특히 크롬과 마찬가지로 희귀자원이 되다시피 했으니 독일 육군 병기국 입장에서는 자원 수급에서도 썩 좋지가 않았다 )로 인해 가격이 너무나도 비싸져 육군 병기국에게 합격점 자체를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전투도 아닌 기본 중량이 65톤으로 증가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는데 안 그래도 출력이 약한 엔진으로 인해( 레오파르트Ⅱ와 같이 1,500마력 디젤엔진이 있었다면 얘기는 달라졌겠지만 ) 최대 속도가 시속 35km로 저하되었고 접지압마저 1.22kg/㎠로 낮아지면서 페르디난트 뺨치는 굼벵이로 전락해버렸다.
  결국 VK45.02(P)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악순환이 반복돼 1942년 11월 3일자로 시제차량 3대만 제작된 뒤 최종 탈락하고 말았다.
  포르쉐사 입장에서는 헨쉘과 경합도 벌여보지 못한 채 개발비만 왕창 날린 셈이니 이보다 더 분통터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너무 늦게 시작한 설계, 티거Ⅱ의 탄생 

개발을 전광석화와 같이 진행했던 포르쉐사가 쪽박을 차버리자 헨쉘사는 쾌재를 불렀지만 당장 그렇게 녹록한 입장은 아니었다.

  포르쉐사가 개발을 진행시킬 동안 헨쉘사는 아예 기초 설계조차 착수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얼마나 늦었는지 VK45.02(P)가 탈락하던 시점까지도 설계가 완료되지 않을 정도였다.

  왜 이렇게 설계가 늦어졌는가 살펴보면 바로 육군 병기국의 너무나도 지나친 요구사항 때문이다.

  육군 병기국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포르쉐사의 설계보다는 그래도 정도( 政道 )를 유지하는 헨쉘사에 거는 기대가 컸고 자연 포르쉐사가 탈락한 이후 경쟁자가 사라져버린 덕분에 보다 안정적으로 설계를 할 수 있겠다는 설계자들의 기대감마저 아우토반을 향해 던져버리게 한 것이다.

  육군 병기국은 수차례 공문을 보내 속도와 장갑에 대한 다양한 요구사항을 강조했고 설계자들은 그야말로 머리가 터지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이런 경우를 보면 가급적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 필수다 )

  그러나 이 정도는 양반!

  육군 병기국은 곧 판터 전차를 대체할 ‘차기 주력전차인 판터Ⅱ와 대부분의 부품을 공용해야 함’을 끈덕지게 강조했다.
  자연 판터Ⅱ와의 부품 공용화는 차기 중전차의 필수요인으로 작용했고 헨쉘사의 설계가 지연되는데 한 몫 두둑이하고 말았다.

  하지만 설계진을 괴롭혔던 판터Ⅱ 계획이 사실상 흐지부지되자( 대신 축적된 노하우는 훗날 판터 G형에 상당수 반영되었다 ) 헨쉘사의 설계진들은 10년 묵은 채증을 풀어내듯 설계를 진행시킬 수 있게 되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영국 육군)

 

육군병기국의 요구사항

이렇게 등장한 헨쉘사의 시제차량은 VK45.03(H)로 명명되었는데 1943년 3월 16일자로 Ⅵ호 전차 B형. 즉 “티거Ⅱ”로 개칭되었다.

  티거Ⅱ로 공식명칭이 바뀐 이후 헨쉘사는 설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우선 육군 병기국의 요구에 따라 차체 전면장갑은 150mm 40°, 전면하단장갑 100mm 40°, 측면장갑 80mm 65°, 후면장갑 80mm 60° 두께로 판터처럼 경사장갑이 적용되었다.

  이로써 티거Ⅱ는 티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장갑 방어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지연되는 포탑, 포르쉐와 헨쉘의 아찔한 동거? 

차체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면서 헨쉘사는 티거에 이어 티거Ⅱ라는 전차 개발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추가할 듯 했지만 뜻대로 되기는 쉽지 않았다.

  “不自由を常と思えば不足なし.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음을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 ) -”

  이 말처럼 당시 헨쉘사로서는 늦게 차체 설계를 시작한만큼 포탑 설계가 너무 늦어져 언제 차량이 완성될 지 모를 상황이었다.

  육군 병기국으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티거Ⅱ를 전선에 배치시켜야 했지만 일이 이렇게 되자 대안을 찾기에 이르렀다.

  그 대안은 의외로 간단했는데 바로 크루프사에서 포르쉐사의 VK45.02(P)를 위해 생산해둔 포탑이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독일 연방정부)

티거Ⅱ의 개발에서 크루프사는 사실상 포탑과 주포의 생산을 담당했는데 포르쉐사가 개발을 선행한 만큼 자연 이 차량에 적합한 포탑의 설계에 착수한 것.

  최초 P-1으로 불린 포르쉐 차량용 시제품은 곧 개량을 거쳐 P-2로 완성되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포르쉐형 포탑으로 크루프사는 VK45.02(P)에 탑재할 목적으로 총 50개를 생산했다.

  이 포탑은 전면의 중앙부가 움푹 패여들어간 독특한 형태 외에 전체적으로 곡선미가 강조된 우아하면서도 상당히 복잡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이는 생산성에서 적잖은 문제를 일으켰는데 특히 곡면으로 인해 적의 포탄이 피격될 경우 그대로 조종수석 상부로 직행하는 “샷 트랩” 현상이 얼마든지 발생할 위험성이 다분했다.

  독일 육군 병기국으로서는 판터 D/A형에서 이 문제로 인해 적잖은 피해가 발생했던 점에 우려했지만 이 포탑의 문제점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우선 티거에 비해 포탑의 전장이 늘어나 공간이 넓어진 점은 환영할 부분이었지만 대신 폭이 좁았고 여기에 경사장갑이 적용되면서 포탑 상면의 면적이 비좁아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차장용 해치인 “큐폴라”와 장전수 해치를 동시에 설치하려다 보니 비좁아진 포탑 상면의 면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큐폴라가 포탑 측면으로 삐져나와 돌출부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생산성이 더 안 좋아진 것은 둘째로 치고 돌출이 된 큐폴라 부위에 적탄이 명중할 경우 치명상을 입기가 쉬웠다.

  하지만 당장 독일 육군 병기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단점으로 인해 50개나 생산한 포탑을 그냥 고철 처리할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고 일단 이 포탑이 헨쉘사의 시제차량에도 그대로 장착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 우선 급한 대로 헨쉘사의 시제 차량에 포르쉐형 포탑을 얹어봤는데 별다른 문제없이 딱 들어맞았다.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이 될 ‘뻔’한 포르쉐형 포탑은 이로써 구사일생으로 회생, 헨쉘사는 차체의 개량과 시험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티거Ⅱ는 예정대로라면 헨쉘사가 설계한 차체에 포르쉐형 포탑을 장착한 형태로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겠지만 앞서 언급한 단점들은 날이 갈수록 손실이 늘어만 가는 독일군의 입장에선 썩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특히 "샷 트랩“ 현상에 대한 우려는 전차병들에게 심리적인 압박으로 작용하기 충분했고 돌출된 큐폴라 부위의 방어력 문제도 그냥 넘기기에는 미적지근했다.

  독일 육군 병기국으로서도 한정된 물자와 생산시설로 생산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형태였고 앞서 언급한 방어력 및 샷 트랩 현상을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판터와 같은 주력전차라면 몰라도 중전차대대에 배치되어 다급한 전장의 소방수로 투입되어야할 차기 중전차였기 때문에 P-2 포탑은 나쁘지는 않아도 2% 부족한 것이 분명해졌고 마침내 1943년 12월 6일, 육군 병기국은 P-2를 개량해 방어력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생산성이 우수한 신형 포탑의 개발을 지시했다.

  하지만 헨쉘사나 크루프사 입장에서는 당장 새로운 포탑을 신규 설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헨쉘사와 크루프사의 기술진은 고심 끝에 P-2 포탑의 기본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되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위를 개량하기로 결정했다.

  기본 복안이 완성되자 포탑 개량은 급물살을 탔고 설계도가 완성되었다.

  새로운 포탑은 기존의 P-2와 달리 독일전차 특유의 각진 형태가 돋보인 단순한 형태였는데 길쭉한 길이와 좁은 폭은 P-2 포탑과 동일했지만 생산성 향상을 위해 포탑 전면의 곡선 부위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81° 경사의 단순한 장갑판으로 교체했다.

  또한 비좁은 면적으로 불편함이 호소된 포탑 폭을 개선, 경사각을 P-2의 80°에서 9°를 완화해 71°로 재조정함으로써 포탑의 상면 폭을 보다 넓혔다.

  아울러 장전수 해치 위치를 후방으로 이동시킴으로써 큐폴라가 포탑 측면으로 돌출된 문제점을 해결함과 동시에 곡선 형태에서 수직각에 가까운 장갑판으로 교체되어 발생한 방어력 부족 문제는 전면 장갑 두께를 180mm 81°로 강화함으로써 해결했다.

  여기에 포 방패가 P-2 포탑의 단순한 사각형 형태 대신 원형의 자우코프( Saukopf, 돼지코 ) 형태로 변경됐고 기존 P-2 포탑이 포탑 내에 16발의 포탄을 적재할 수 있던데 비해 신형 포탑은 22발을 적재할 수 있게 되어 장전수의 수고를 덜어줬다( 여담이지만 티거Ⅱ는 독일전차 최초로 포탑 내부에 포탄을 적재한 전차가 되었다 )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영국 육군)

동시에 주포의 개량도 실시되어 기존의 1겹 대신 야전에서 정비 및 교체가 용이하도록 2겹 형태로 변경했다.

  이렇게 개량이 실시된 포탑을 공식 명칭 “제리엔 튀름( Serien Tu"rm, 양산형 포탑 )”, 일반적으로는 “헨쉘형 포탑”으로 호칭한다.

  우리가 아는 티거Ⅱ는 사실상 제리엔 튀름을 탑재한 형식으로 P-2 포탑을 탑재한 50대는 ‘티거Ⅱ 포르쉐형 포탑 장착형’, 제리엔 튀름을 장착한 437대는 ‘티거Ⅱ 헨쉘형 포탑 장착형’으로 구분한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영국 육군)

 

강력한 공격력, 88mm kwk 43 L/71 

티거Ⅱ의 신형 포탑이 완성되자 크루프사는 2겹 형태로 개량된 주포의 사격 시험에 심혈을 기울였다.

  티거Ⅱ의 주포로 선정된 88mm kwk 43 L/71은 라인메탈의 88mm Flak 41 L/74보다 3구경장이 짧았지만 처음부터 전차포로 설계되어 관통력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3구경장이 짧아진 만큼 포탄의 길이도 더 짧게 완성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탄약고 적재가 용이해졌고 휴대량도 늘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장점은 주포의 위력에 비하면 껌이었다.

  크루프사가 초기 1겹 포신에서 2겹으로 교체된 kwk 43 L/71로 250cm×200cm 표적에 판저 그라나테 39/43( Panzer Granate 39/43, 39/43식 철갑탄 )를 시험 발사한 결과 초속 1000m/s를 발휘, 100m에서 202mm, 500m에서 185mm, 1km에서 165mm, 1.5km에서 148mm, 2km에서 132mm의 관통력을 발휘했다.

  이는 A-19 122mm 군단포를 개량한 D-25T의 IS-Ⅱ보다도 강력한 위력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 39/43식 철갑탄을 사용한 경우이고 보다 경량화된 판저 그라나테 40/43( Panzer Granate 40/43, 40/43식 철갑탄 )을 발사한 결과 초속 1,130m/s로 비행하여 100m에서 238mm, 500m에서 217mm, 1km에서 193mm, 1.5km에서 173mm, 2km에서 153mm 두께의 장갑판을 관통했다.

  티거Ⅱ가 주포 구경은 작았어도 122mm 포를 장비한 IS-Ⅱ와의 전차전에서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 데는 이처럼 강력한 철갑탄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영국 육군)

또한 소련전차보다 장갑이 약한 셔먼을 장비한 미군이나 영국군, 프랑스군 전차대를 상대로 사신( 死神 )으로 군림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강력한 티거Ⅱ의 포탄은 총 86발이 적재되었는데 이 중 48발은 각 16발씩 3개의 탄약고에 적재하고 16발은 포탑 저판 하부에, 22발은 포탑 후방에 적재했지만 일선 부대에서는 탄약 유폭의 위험성 때문에 가급적 포탑내 적재는 금지시켰다.

  주포 조준기로는 초기 쌍안식 TZF 9b가 장착되었지만 헨쉘형 포탑부터는 단안식 TZF 9d로 교체되었다.

  판터에 탑재된 TZF 12a가 2.5배율과 5배율을 선택할 수 있던 반면 보다 사거리가 긴 티거Ⅱ의 TZF 9d는 3배율과 6배율을 선택할 수 있었다.

 

 지지부진한 티거Ⅱ의 생산 

헨쉘사의 시제 차량은 급격한 개량을 거듭하며 서서히 완성단계에 접어들었고 크루프사 역시 개량형 88mm kwk 43 L/71의 시험 발사를 성공리에 마치면서 마침내 육군 병기국은 1943년 7월, 정식으로 티거Ⅱ 생산을 인가했다.

  바로 Panzerkampfwagen Ⅵ. Ausf B. TigerⅡ sd.kfz 182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티거Ⅱ는 판터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생산라인 정비로 인해 실질적인 생산은 1944년 2월부터 이뤄졌다.

  따라서 1943년 12월 말까지 생산된 차량은 겨우 3대( Fgst.#280001~280003으로 1943년 10월에 280001이 완성되었고 12월에 280002, 280003이 출고되었다 )에 불과했다.

  여기에서 Fgst는 차체 일련번호로 티거Ⅱ는 280001부터 시작해 280489로 생산이 종료되었다( 더 생산하고 싶었지만 1945년 3월, 카셀의 헨쉘사 공장이 미군에게 점령당해 생산 자체가 중단되었다 )

  독일 국방군은 티거Ⅱ를 생산대수를 1,500대로 잡았지만 판터나 Ⅳ호 전차, 돌격포, 구축전차, 대전차 자주포, 반궤도 장갑차 등을 생산하기에도 벅찬 한정된 자원으로 이 수효를 충족시킨다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다.

  실제 1944년 2월부터 포르쉐형 포탑을 장착한 50대의 초도 생산이 시작되었지만 겨우 8대만 출고되었을 뿐이다.

  반면 티거는 2월에만 95대가 카셀 공장에서 출고되었으니 독일 육군 입장에서는 아주 기막힌 생산효율이라 할 수 있었다.

[디펜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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