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2 스탈린 전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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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2 스탈린 전차 (2)
  • 이치헌 기자
  • 승인 2020.01.0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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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디펜스 투데이)
JS-2 스탈린 전차 (사진: 러시아 국방부)

 IS 시리즈의 1번 타자, IS-85의 등장

  당시 소련의 생산라인은 T-34와 KV 계열 차량의 생산으로도 벅찬 상태라 IS-85 전차의 생산이 개시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1943년 9월 4일, 소련군 최고 지휘부령 제4043호가 발령되었는데 여기에는 IS-85와 별도로 개발이 진행 중이던 KV-1S의 개량형( 훗날의 KV-85 )을 대량 생산해 소련군에 배치시키라는 지시가 적혀있었다.

  기술진으로서는 지금 이 시각에도 일선에서 독일 기갑부대에 맞서 다수의 T-34/76이 고철로 변하고 있는 참담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IS-85를 투입시키고 싶은 의지가 강했지만 이것은 단순히 의지만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었다.

  그 결과 임시방편으로 우선 KV-1S의 차체에 IS-85용 포탑을 탑재한 KV-85가 제식 채용되어 148대가 생산돼 전선으로 향했다.

  이 KV-85는 IS 시리즈와는 이렇다할 연관관계가 없는 임시변통의 성격이 강한 차량이었고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자면 훗날 미하일 티모페예비치 칼라시니코프( Михаи́л Тимофе́евич Кала́шников)가 설계한 AK( Автомат Калашникова,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 )가 대량 생산되기 전까지 운용된 세르게이 가브릴로비치 시모노프( Серге́й Гаври́лович Си́монов, 1894~1986 )가 설계한 SKS-45( Самозарядный карабин Симонова-45, 45년식 시모노프 반자동 기병총 )가 그 땜빵을 맡던 경우와 유사하다.

  KV-85의 생산이 진행되어 전선으로 투입되는 와중에도 IS-85는 개량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 중 코친 기사를 비롯한 기술진을 괴롭힌 것은 바로 중량!

  KV-13의 차체를 연장( 6.77m )하고 대형 포탑과 D5T 전차포를 탑재했으니 중량이 늘어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당연히 당시 제식으로 운용 중이던 500마력대의 디젤 엔진으로 가동할 경우 기동력이 어떨지는 안봐도 뻔했다.

  이 때문에 코친 기사와 기술진은 극단의 경량화를 추진했는데 우선 스프로켓과 보기륜을 소형으로 교체한 후 차체 경량화에 착수했다.
  특히 차체 전면에 대해서는 거의 극단적인 수준의 경량화가 이뤄졌는데 이를 위해 차체 전면의 전방 기관총 사수석을 생략하고 조종수석을 중앙으로 이동시킨 결과 해당 부위의 면적을 대폭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전방 기관총이 없어져 보병이 근거리에서 공격할 경우 대응할 방법이 전무해지는 단점이 생겼다.

  어찌되었든 가장 장갑 두께가 두툼한 전면의 면적이 대폭적으로 감소됨으로써 IS 시리즈는 “판터”와 “티거”를 능가하는 거대한 덩치와 중장갑, 대구경 주포를 장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중량이 50톤을 넘기지 않는 상당히 가벼운 수준의 전차가 되었고 특히 IS-85는 이렇게 장갑이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V-2-IS 520마력 디젤엔진을 탑재해 KV-Ⅰ보다 빠른 시속 37km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이렇게 개발이 완료된 IS-85는 총 130대가 생산되었다.

 

  더욱 강력한 주포와 방어력으로! IS-Ⅱ의 등장

   이렇게 순조롭게 생산이 진행되던 IS-85, 혹은 IS-Ⅰ의 시대는 그렇게 오래가지를 못했다.

  우선 T-34도 D5T를 탑재한 T-34/85로 변경되어 전선에 투입되었고 보다 개량이 진행 중인 S53이 탑재될 경우 IS-85와 차이가 없게 되어 기동력이 떨어지는 중전차( 重戰車 )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던 IS 시리즈의 존재가 유명무실해지는 격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IS-85의 단명을 앞당긴 요인은 바로 D5T 전차포

  전장에서 노획한 판터와 티거 전차에 대한 주포 관통력 시험에서 D5T는 생각만큼 효과적인 관통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
  더욱이 독일군은 노획한 SU-85와 T-34/85를 정밀 분석, 85mm 전차포로 티거 전차에 대해 관통력을 발휘하려면 최소 600m 이내에서나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D5T는 이론적으로 1,000m 거리에서 100mm의 장갑판을 관통해야 했지만 당시 소련의 주포 가공 기술로는 일정한 수준의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둘째로 치고 탄도가 곧게 뻗어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티거의 88mm kwk 36 L/56은 여전히 600m 이상의 거리에서 T-34/85를 간단하게 격파할 수 있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으니 소련군으로서는 보다 강력한 주포가 필요했다.

  고심 끝에 소련군은 대공포 개량보다는 차라리 대량생산되어 포병에서 운용 중이던 BS-3 100mm 대전차포( БС-3 100-мм полевая пушка образца 1943 года, 그라빈 기사가 해군용 B-34를 개량한 것으로 총 3,816문 생산 )와 A-19 122mm 군단포( 122-мм пушка образца 1931/37 годов/ 총 2,450문 생산 )를 1차 선발했다.

  BS-3은 애시당초 대전차포로 설계되어 포구 초속만 무려 1,000m/s를 발휘하는데다 관통력도 1,000m에서 180mm에 달해 나름대로 점수를 먹고 들어갔지만 문제는 1943년에 막 제식 채용되었을 뿐 실질적인 생산은 1944년부터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는 곧 이 포가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였고 덕분에 승자 자리는 대량 생산이 진행 중이고 고폭탄 등을 유용할 수 있는 A-19가 차지했다.

  그러나 A-19라고 해서 당장 안심할 수는 없던 것이 이 포는 처음부터 전차포로 고안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당장 좁은 전차 포탑 내부에서 운용할 수 있도록 개량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시간 끌다간 언제 투입될 지 알 수 없는 일이었고 이로 인해 초기 생산차량은 A-19를 그대로 탑재한 뒤 투입되었다.
  이것이 바로 IS-Ⅱ로 122mm 포를 탑재했기 때문에 IS-122로도 호칭된다.

  이 차량은 전차포형인 D-25T( Д-25Т )가 완성되어 탑재된 IS-Ⅱ 초기형이 생산되기 전까지 약 675대가 생산되었다고 한다.

 

IS-II의 여러가지 문제점 돌출

  IS-Ⅱ의 극초기형은 전차포가 아닌 군단포를 그대로 탑재해 초반부터 여러 문제점을 돌출시켰다.

  포수는 우선 조준경이 주포와 너무 근접해 장착된 덕분에 조준에서 상당히 애를 먹었고 특히 탄약고에 적재할 수 있는 포탄이 총 28발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처음 탑승한 전차병들을 경악하게 했다.

  무엇보다 A-19는 전형적인 군단포인 덕분에 탄두와 장약을 각각 장전하는 분리 장전식이라 발사속도는 분당 3~4발에 불과했다.
  이는 독일전차가 IS-Ⅱ와 조우할 시 초탄을 발사해 빗나가더라도 연이어 4~5발 이상을 추가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반면 IS-Ⅱ는 초탄이 빗나간 이후 오로지 방어력에 의존하며 차탄을 장전해야 하는 입장인 셈이었다.

  이 문제는 일선의 전차병들에게 상당한 불만거리로 작용했지만 수적으로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전투를 치르면 그렇게 나쁜 조건도 아니었고 일단 대량 생산에 돌입한데다 원래 전차병의 편의성보다는 한 대라도 더 빨리 생산할 수 있는 생산성을 추구한 소련의 방침에 따라 자연히 묻혀가게 되었다.

  대신 122mm A-19와 D-25T는 25kg의 탄두를 이용해 독일전차보다 우수한 공격력을 발휘, 이를 만회할 수 있었다.

  IS-Ⅱ의 122mm 주포는 철갑유탄을 초속 790m/s로 발사해 1km 거리에서 160mm, 1.56km에서는 142mm, 2km에서는 126mm 두께의 장갑판을 관통할 수 있었다.

  이는 “판터”와 “티거”에게 적잖은 위협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고 독일이 신형 중전차를 개발하게 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IS-Ⅱ 극초기형이 생산된 이후 개발이 지지부진했던 D-25T가 완성되고 포탑의 개량이 실시되었다.

  포탑은 우선 너무 좁았던 포 방패의 폭을 보다 넓혀 조준을 용이하게 했고 제조 공정이 단순화됨과 동시에 방어력 향상에도 기여했다.

  포탑이 개량된 이후에는 차체의 개량이 실시되었는데 JS-Ⅰ/Ⅱ는 KV-1과 유사한 120mm 두께에 30°경사각을 적용한 장갑판 형태를 갖추고 있었지만 안 그래도 차체 전면 면적이 축소되고 대구경 주포를 탑재해 비좁아진 조종석이 더욱 불편해진데다 전방 관측창이 독일군 포수들의 단골 표적이 되어버리면서 방어력에서도 적잖은 문제점을 유발한 것!

 

IS-II 개량

  실제 이런 식으로 전방 관측창이 관통되어 격파된 IS-Ⅱ가 늘어나자 개량은 차체 전면을 재설계하는 수준으로 이뤄졌다.
  우선 차체 전면 장갑판을 120mm로 유지하되 대신 T-34와 같이 경사각을 전면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생산공정을 단축시킴은 물론 조종석의 공간을 어느 정도 확장할 수 있었다.

  또한 전방 관측창을 폐지시키고 보다 단순한 형태로 변경해 방어력을 향상시켰다.

  이렇게 개량이 실시된 차량을 IS-Ⅱ 1944년형으로 호칭한다.

  이리하여 IS-Ⅱ는 차체 중량을 거의 늘리지 않고도 방어력을 향상시킴으로써 독일전차대에 중대한 위협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되었다.

[디펜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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