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다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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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다리 (1)
  • 이치헌 기자
  • 승인 2020.01.0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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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너먼 다리의 실제 작전인 마켓가든 작전

머나먼 다리( A Bridge Too Far )

1977년 개봉 당시 대규모 물량과 당대의 명 배우들을 있는대로 다 캐스팅하는 등 화려한 스케일을 자랑한 전쟁영화의 걸작, 머나먼 다리!

하지만 이 영화의 소재가 된 마켓 가든 작전에는 실제 영화와는 다른 불편한 진실들이 다수 내재되어 있다.

그러한 진실을 토대로 이 작품을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MGM)

머나먼 다리는 전쟁영화 역사에 있어 그 규모면이나 감동면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동시대 소련 전쟁영화에 비하면 물량이나 규모에서 뒤처지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지만 오늘날의 제작 현실에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다만 이 영화에서 다룬 아른헴 전투에서 누락된 불편한 진실들이 다소 있다는 점은 부정할 여지가 없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MGM)

 

시작하며

전쟁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머나먼 다리”라는 영화 제목을 들어봤을 것이다.

아마 1993년 이후 태생은 다소 생소한 작품이겠지만 현충일 특선영화로 방영해준 것을 감상한 후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만큼 엄청난 물량과 스펙터클( 당시 기준 )한 전투 장면을 보여준 전쟁영화사의 기념비적 작품인데 이 작품은 오늘날의 시점으로 보자면 적잖은 오류가 내재되어 있다.

이는 이 영화가 제작되던 1970년대 당시 사료들이 다소 부족한 탓도 컸고( 원작이 코넬리어스 라이언의 “머나먼 다리” ) 특히 연합군의 패전이다 보니 이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독일군의 전력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시키는 등의 사실 왜곡이 한몫 두둑이 한 점도 있지만 다행히 최신 자료들이 잇따라 출간되면서 이 부분에 대한 오류는 많이 줄어든 상태다.

물론 아른헴 전투에 관해서는 충분한 자료를 보유하지 못하다는 한계( 애초에 공수부대 전공도 아니고 병과 역시 보병 출신이다 )가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만큼 나름 신경을 썼으며 부족한 부분은 이해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켓 가든 작전의 태동과 독일군의 상황

아른헴 전투가 포함된 마켓 가든 작전은 팔레즈에서 독일군의 잔존부대를 확실하게 박살내 버리며 노르망디-프랑스 전역을 승리로 이끈 연합군이 이 여세를 몰아 1944년 내로 전쟁을 끝내버리자는 다소 지나치게 낙관적인 분위기에서 감행되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영국 육군)

흔히 몬티 영감으로 잘 알려진 버나드 로 몽고메리 원수가 야심차게 추진한 이 작전은 전선에서 100km 떨어진 네더라인강 하류의 네덜란드 주요 도시들에 공수부대를 강하시키면 예하의 강하병들이 네덜란드 본토를 가로지르는 5개의 교량과 주요 도로들을 점령하고, 그 도로와 교량을 따라 브라이언 호록스 중장의 영국 제30 군단 소속 전차들을 앞세워 점령지들을 연결하는 회랑( 回廊 )을 형성, 다시 그 회랑을 통해 마일즈 뎀프시 중장의 영국 제2 야전군 주력부대가 북상해 네더라인강을 도하할 경우 큰 피해 없이 독일의 루르 공업지대를 손에 넣어 독일의 전쟁 수행능력을 완전히 마비시킬 수 있으리라는 꽤 획기적이고도 놀라운 계획이었다.

의도 자체로는 놀랍겠지만 문제는 한때 서유럽을 제패했던 독일군이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우선 영국 제1 공수사단이 강하할 도시인 아른헴 일대에 9월 5일자로 주둔한 무장 친위대 제2 기갑군단 예하 제9 SS 기갑사단 “호엔 슈타우펜”과 제10 SS 기갑사단 “프룬츠 베르크”의 경우 노르망디 전역에서의 처참한 피해로 부대 자체가 재편성을 요구하는 상황이었지만 당장 네덜란드 일대에는 무장 친위대 하사관학교를 비롯한 각종 지원부대들이 대거 포진한 상태였고 특히 제15군의 잔존병력 65,000명이 벨기에 일대에서 철수해 재편성 중이었다.

또한 아돌프 히틀러 총통이 7월 2일자로 해임했던 폰 룬트슈테트 원수를 다시금 서부전선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9월 4일에 부임함으로써 네덜란드-독일 일대의 전선은 나름 부족하기는 하지만 부랴부랴 재건이 이뤄지고 있었다.

 

아른헴의 독일 제2 SS 기갑군단

자, 이제 영국 제1 공수사단이 담당한 아른헴 일대에 배치된 독일 제2 SS 기갑군단을 한번 살펴보자.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독일 연방정부)

흔히 영화에서 압도적인 전차 전력으로 영국 제1 공수사단을 궤멸시키는 것으로 묘사되는 빌헬름 비트리히 SS 중장의 제2 SS 기갑군단이지만 과연 실제로도 그러했을까?

유감스럽게도 당시 제2 SS 기갑군단의 상황은 그리 썩 좋지가 못했다.

군단 예하 2개 기갑사단은 문자 그대로 지리멸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우선 아른헴 지구에 주둔한 제9 SS 기갑사단 “호엔 슈타우펜”은 1944년 8월, 뤼티히 지구에서 퇴각하여 8월 30일에 루앙 방면에서 세느강을 도하할 당시 16,000명이었던 사단 전력이 불과 2,500여명 수준으로 급감한 상태였고 사단장 질베스터 슈타들러 SS 소장은 퇴각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여 본국으로 후송돼 사단 작전참모인 발터 하르쩌 SS 중령이 임시 사단장을 맡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독일 연방정부)

게다가 마켓 가든 작전이 감행된 9월 중순 경, 제9 SS 기갑사단은 결국 재편성을 위해 독일 본토로 이동하기로 결정돼 주요 장비를 제10 SS 기갑사단에 인계하여 보유하고 있는 전차라고는 제9 SS 전차엽병대대의 Ⅳ호 구축전차 2대와 보고서상에 존재하지 않던 판터 전차 3대가 전부였다.

제10 SS 기갑사단 “프룬츠 베르크”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라 제9 SS 기갑사단에서 넘겨받은 장비들을 다 합쳐도 제10 SS 기갑연대가 보유한 전차는 고작 10여대 남짓에 불과했고 총 병력 역시 3,000여명 수준에 그쳤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9월 4일자를 기해 B집단군 사령관 발터 모델 원수가 이 군단을 전선에서 120km 후방에 위치한 아른헴 지구에 배치해 재편성을 지시함은 물론 제9 SS 기갑사단을 독일 본토로 후송시킨 것 또한 무리는 아니었다.

즉, 현재 상태의 전력으로 연합군의 막강한 공수사단을 맞이했다간 제2 SS 기갑군단은 문자 그대로 전멸, 그 자체였다.

[디펜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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