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다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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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다리 (3)
  • 이치헌 기자
  • 승인 2020.01.0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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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너먼 다리의 실제 작전인 마켓가든 작전

희비가 엇갈린 아른헴의 상황

한편 아른헴에서는 그야말로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이 발생하니 바로 빅토르 에버하르트 그레브너 SS 대위의 제9 SS 기갑정찰대대의 장갑차량 30대가 통과한 지 1시간 만에 프로스트 중령의 제2 강하병대대가 교량 북단의 토치카를 피아트 대전차로켓으로 파괴하고 아른헴 대교 북단을 장악한 것!

발터 모델 원수와 빌헬름 비트리히 SS 중장으로서는 영국 제30 군단이 진격을 개시하고 아른헴 서부 지역과 나이메헨 일대에만 전력을 집중해도 모자란 판국에 벌어진 이 상황에 머리 속이 더욱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진격을 개시한 제30 군단의 전차대가 공수부대와 교전을 벌이고 있는 교량들에 들이닥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연합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신의 운명은 참으로 복잡다단한 것이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영국 육군)

제30 군단의 전차대는 치열한 공중지원을 받는 와중에도 좁은 네덜란드의 둑길을 따라 이동하는 족족 독일군 대전차포의 기습을 받아 그 진격이 멈춰서기 일쑤였고 그 결과 예정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이는 머나먼 다리에도 잘 묘사되어 있다 )

그리고 발터 모델 원수의 어깨를 덜어주는 일이 발생하니 점차 증원되는 독일군의 규모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해군 보병이나 공군 지상병력 및 노약자들로 구성된 제176 보병사단 등 잡다한 전력이 많았지만 그 중에는 티거Ⅱ 전차를 보유한 제506 독립 중전차대대와 제504 중전차대대 2중대장 한스 훔멜 중위와 전차병 및 후방에 산개되어 있던 차량들을 긁어모아 편성한 뒹키르헨 중전차 중대의 티거 전차 14대 등의 강력한 전력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이 전차들이 활약할 시기는 아직 멀었지만 )

한편 9월 18일, 나이메헨 일대에서의 정찰 및 방어선 보강 임무를 마치고 본대로 복귀하려던 그레브너 SS 대위의 제9 SS 기갑정찰대대는 아른헴 대교 북단이 프로스트 대대에게 장악당한 통에 남단의 제9 SS 기갑사단과 합류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나이메헨 교량 남안과 엘스트 지구에 8대의 장갑차량을 남겨두어 장갑차량은 22대로 감소한데다 상대는 건물에 포진하고 피아트 대전차로켓을 보유한 공수부대원!

만만치 않은 상대지만 그레브너 SS 대위는 장갑차량을 이용한 강행돌파를 결심했다( 머나먼 다리에서는 제9 SS 기갑정찰대대가 교량 탈환을 위해 프로스트 대대 방면으로 쳐들어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

하지만 오전 9시 30분에 감행된 강행돌파에서 선봉 5대의 장갑차량은 공수부대원들의 허를 찔러 무사히 통과했으나 6번째 차량부터는 상황이 달라져 이들은 그로즈니 시가전에서 러시아군이 당했던 것과 똑같이 건물 상부로부터 쏟아지는 브렌 경기관총과 피아트 대전차 로켓 세례를 얻어맞아 총12대의 장갑차량이 격파당하고 이 과정에서 그레브너 SS 대위도 전사하여 강행돌파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다.

독일군으로서는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9월 18일, 영국군의 비극

하지만 독일군의 비극 못잖게 영국군의 비극도 곧바로 닥쳐왔다.

영화에서는 그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미 제101 공수사단의 상황도 다뤄야했기에 누락되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솜 전투에 버금가는 영국 제1 공수사단의 무모한 돌격이 바로 다음 날 감행되었기 때문이다.

9월 18일 14시 무렵을 기해 총 1,336대의 C-47 수송기와 340대의 스털링 폭격기가 네덜란드에 도착, 전날의 강하지점에 보급품을 만재한 글라이더와 공수부대원들을 강하시키기 시작했다.

아른헴에는 시안 하게트 준장이 이끄는 제4 공수여단 병력 3,000명이 강하했는데 이로서 제1 공수사단은 총9대대로 완편되었다.

총병력이 9,000명에 달하니 이만하면 지금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제9 SS 기갑사단의 병력은 제압할 수 있을 것이고 아른헴 대교 북단을 장악한 프로스트 대대와 연결이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고 사단장 어카트 소장을 비롯한 사단 사령부는 모처럼만에 희색이 돌았다.

하지만 독일군도 앉아서 당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는 점.

9월 18일 야간을 틈타 슈핀들러 SS 중령은 묄러 전투단과 그로프 전투단의 병력까지 가세시켜 유트레히트 ━ 아른헴 간 국도의 방어선 구축에 힘을 쏟고 있었고 특히 20mm 대공 기관포를 보유한 그로프 전투단을 북방에 전개하여 방어선 돌파 시 공수부대원들을 향해 20mm 기관포탄을 퍼부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세심한 배치를 하였다( 이 기관포의 위력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신 분들은 충분히 아실 수 있을 것이다 )

또한 네더라인강의 둑을 향해 진격해올 경우를 대비, 네더라인강 남안에는 돌파에 실패한 제9 SS 기갑정찰대대의 20mm와 37mm 대공 기관포 탑재 차량을 포함한 10여대의 장갑차량을 배치시켰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독일 연방정부)

마침내 9월 19일 새벽 4시를 기해 영국 제1 공수사단 예하 제1, 3, 11 강하병 대대와 제2 사우스 스탠포드셔 대대 총 합계 4개 대대 병력이 제9 SS 기갑사단의 방어선을 향해 돌격을 감행했다.( 마치 솜 전투를 방불케하는 이 장면은 참으로 장관이었겠으나 문제는 )

초반 방어선이 남단이 돌파되어 공수부대원들이 둘로 나뉘어 국도변을 전진할 때까지는 좋았지만 루트비히 슈핀들러 SS 중령이 이 때를 노려 배치해둔 비장의 카드가 빛을 발한 것이다.

요란한 발사음과 함께 그로프 전투단과 제9 SS 기갑정찰대대의 20mm, 37mm 대공 기관포들이 영국군을 향해 불을 뿜기 시작한 것!

특히 자신들의 대대장까지 전사한 제9 SS 기갑정찰대대의 분노가 담긴 37mm 기관포탄이 더욱더 위력적이었을 것이다.

이 두 방향에서의 대공 기관포 사격으로 영국 공수부대원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어 공세는 실패했고 운좋게 아른헴 대교 1.4km 전방까지 진출했던 더비 중령의 제1 강하병대대도 제9 SS 기갑사단의 방어선에 걸려 격퇴당했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제280 돌격포 여단의 Ⅲ호/Ⅳ호 돌격포 10대가 전선에 도착해 슈핀들러 전투단에 배속되면서 제9 SS 기갑사단의 기갑전력이 증강되기 시작했다.

결국 제1 공수사단은 오스터르베크( Oosterbeek ) 방면으로 철수하게 되어 프로스트 중령의 제2 강하병 대대는 아른헴 대교 일대에 완전히 고립되어 버리고 만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미육군)

 

티거에게 무너져 내리는 아른헴 대교

아른헴 대교를 둘러싼 공방전이 격화되는 와중에 마침내 918, 파더보른 인근의 주둔지를 출발한 뒹키르헨 중전차 중대의 티거 2대가( 나머지 차량들은 이동 중 고장을 일으키며 주저앉아 당일 전투에 합류할 수 없었다 ) 아른헴 현지에 도착했다.

크나크 중위와 바르네키 상사가 지휘한 2대의 티거는 제10 SS 기갑사단 예하 기갑정찰대대를 주축으로 편성된 브링크만 전투단에 배속되어 20시를 기해 공세에 나섰다.

하지만 주변의 고층건물에 매복한 프로스트 대대의 강하병들은 3문의 57mm 대전차포를 동원해 맹렬한 포격을 퍼부었다.

선두에 선 크나크 중위의 티거는 파괴된 제9 SS 기갑정찰대대의 차량 잔해를 밀어버리며 대전차포 1문을 기관총 사격으로 제압하는데 성공했지만 나머지 2문의 집중 포화를 얻어맞아 포탑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음은 물론 2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다.

크나크 중위의 티거가 전투 불능상태에 처하자 후속한 바르네키 상사는 즉각 자신의 차량을 대전차포의 유효 사정거리 밖으로 후진시켜 본대의 도착을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영화 머나먼 다리에서는 네덜란드군의 레오파르트 전차를 개조한 판터가 공격을 가하는 것으로 묘사했지만 실상은 이보다 더욱 강력한 티거가 나선 것인 셈이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영국 육군)

한편 아른헴 대교 북단을 사수하고 있던 프로스트 중령은 무장 친위대가 티거까지 투입하자 절망적인 위기감에 봉착했다.

9월 20일, 마침내 제2 강하병 대대 최후의 날이 닥쳤으니 바로 수리를 마치고 행군을 재개한 뒹키르헨 중전차 중대의 나머지 티거 12대가 아른헴 현지에 도착하여 크나우스트 전투단에 배속돼 바르네키 상사의 티거와 함께 다시금 전투에 돌입했기 때문이었다.

2대의 공격도 벅찬 마당에 이제 13대나 되는 티거들을 맞이하게 된 프로스트 중령은 마침 사단장 어카트 소장과 통신재개에 성공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자네가 우리 쪽으로 와줄 수는 없겠나?”였다.

이는 영화에서도 정확하게 묘사가 되어 있는데 문제는 영화에서는 판터가 설치지만 실제로는 13대나 되는 티거였다는 점이다.

이미 150여명까지 감소된 대대 병력으로 13대의 티거를 막는 것은 자살행위였지만 프로스트 중령은 장렬하게 옥쇄할 것을 결의했다.

오전부터 시작된 티거들의 맹렬한 포격 앞에 프로스트 대대의 거점은 하나 둘 폐허가 되었고 결국 18시를 기해 선두의 1개 소대( 4대 )가 마침내 프로스트 대대의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아무리 최정예 공수부대라 해도 중전차( 重戰車 ) 앞에서는 별다른 도리가 없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잔존한 강하병들의 처절한 저항으로 크나우스트 전투단과 브링크만 전투단 등 나머지 무장 친위대 및 독일군 병력은 교량을 건너오는데 실패했다.

그러나 일단 티거 전차들이 돌파에 성공한 이상 제2 강하병 대대의 저항도 한계점에 봉착해 있었고 결국 9월 21일 밤 12시를 기해 가까스로 살아남은 병력들이 항복하기 시작했고 일부 병력은 오스터르베크의 제1 공수사단 본대를 향해 탈출했다.

또한 항복을 거부한 일부 병력이 9월 23일까지 라인강 북쪽 제방에서 저항했지만 브링크만 전투단의 공격을 받고 전멸하였으니 제2 강하병 대대는 아른헴 대교를 끝까지 사수하다 사실상 전멸하고 말았다.

 

엘스트 지구에서의 격전과 마켓 가든 작전의 실패

9월 20일, 교량을 돌파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뒹키르헨 중전차 중대의 티거들은 21일을 기해 나이메헨 지구를 담당한 제10 SS 기갑사단 “프룬츠 베르크”에 배속돼 엘스트 지구의 격전에 투입되었다.

영화 본편에서는 독일군의 매복 공격으로 진격이 돈좌되는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 엘스트 지구에 배치된 티거 전차들은 아른헴으로 진격해 들어오는 영국 제30 군단을 맞아 효과적인 지연전을 펼쳤지만 반대로 야간 전투에서 영국 제43 보병사단의 매복에 걸려 5대의 차량을 손실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미 아른헴 대교가 독일군의 수중에 넘어간 이상 마켓 가든 작전은 이미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오스터르베크 일대에 고립된 제1 공수사단의 위기가 닥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30 군단의 후방에서도 독일 제59 보병사단과 제107 기갑여단이 도로 차단에 나서는 등(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 4회는 바로 이 전투를 다루고 있다 ) 당장 아른헴 지구에만 전력을 집중하기에도 어려운 입장이었으니 결국 9월 26일, 오스터르베크에서 최후까지 저항하던 제1 공수사단 본대는 제30 군단의 지원 포격 하에 가까스로 네더라인강을 건너 퇴각하는데 성공했다.

이 작전은 문자 그대로 연합군의 참패였고 독일군의 승리였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2차 세계대전의 독일군 (사진: 독일 연방정부)

비록 아른헴 남부의 주요 도시와 교량들이 연합군의 수중에 들어갔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물인 아른헴이 무장 친위대와 독일군에게 탈환되면서 사실상 진격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9월 24일자로 티거Ⅱ를 장비한 제506 독립 중전차대대가 아른헴 대교를 건너 오스터르베크 일대로 투입되던 시점만 봐도 사실상 이 지역에 독일군의 정예부대들이 집중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진격은 어려운 상태였다.

 

연합군의 패배로 끝난 마켓가든 작전

9월 26일을 기해 사실상 종료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마켓 가든 작전은 여러모로 봐도 연합군의 패배였다.

이 작전 기간 중 영국은 숱한 실전으로 단련되었던 정예 제1 공수사단을 사실상 잃어버렸고( 전사 1,485명/포로 6,414명 ) 그 결과 얻은 것이라고는 사실상 도움이 안되는 교량과 진격로 뿐이었다.

반면 독일군은 노르망디의 패전으로 사실상 궤멸되었던 전력만을 동원해 연합군의 정예부대에 맞서 승리를 거두었으니 작전을 입안한 몽고메리 원수로서는 이래저래 스타일을 구긴 셈이 되었다.

자신의 무모한 작전에 대해 몽고메리 원수는 마켓 가든 작전이 90%는 성공했다고 주장했지만 그 실상은 이처럼 참담한 것이었고 아무리 무너져 내려도 상대를 함부로 깔봤다가는 된서리를 맞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영화 머나먼 다리는 장시간의 상영시간 동안 마켓 가든 작전을 전체적으로 잘 조명해준 수작이지만 이처럼 약간의 불편한 진실들이 누락되어 있는 셈이다.

[디펜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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