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의 M24 M4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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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의 M24 M4 전차
  • 이치헌 기자
  • 승인 2019.11.1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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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의 M24 경전차와 M4 셔먼 전차

6.25전쟁에 먼저 투입된 M24 경전차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반도에 투입된 미군 전차는 M24 경전차 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의 주력 경전차였던 M3/M5의 후계로 개발된 차량이다.

독일 전차부대와의 교전을 통해 급격하게 발전을 거듭한 미국 전차 기술력이 총 결집된 덕분에 동시대 미군 전차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토션바를 채택하고 B-25 “미첼” 폭격기에 탑재된 M6 75mm 전차포를 탑재함으로써 37mm 주포를 탑재하는데 그친 M3/M5보다 화력에서 우위를 점함은 물론 신형 캐딜락 8기통 엔진 덕분에 시속 56km라는 나름 준수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18.4톤이라는 중량에 맞추다 보니 장갑 두께가 최대 38mm에 불과했고 이로 인해 투입 초기부터 북한군의 45mm 대전차포는 물론 14.5mm PTRD/PTRS 대전차 소총에도 관통당하는 참극을 겪어야 했다.

북한군과 중국 인민지원군의 대전차 화기에는 도저히 상대가 될 수 없었기에 전쟁 후반에는 주로 후방의 치안 경비 및 보병 잔당 소탕임무에 종사했다.

 

한국전에서 활약한 M4 셔먼전차

총 689대가 투입되어 한국전쟁 당시 수적인 주력이자 전쟁 후반의 고지전에서 사실상의 주력으로 활약한 M4A3와 M4A3E8은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강화된 화력과 엔진 덕분에 북한군의 T-34/85를 맞아 나름 대등한 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

독일 전차를 격파하기 위해 채택된 M1 76mm 주포로 인해 탑재되는 포탄 수는 75mm보다 감소된 55발에 불과했지만 T-34/85 역시 비슷한 수준인데다 기동력 역시 T-34/85가 약간 빠르다는 점을 제외하면 대등소이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양측 모두 서로를 일격에 격파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기에 전투는 먼저 보고 타격하는 쪽이 승산이 높았지만 대체적으로 훈련 수준이 더 높은 미군이 유리했다.

특히 셔먼의 넓은 포탑 내부 공간 및 인체공학적인 설계로 인해 전차병들의 운용 효율 역시 무시 못할 수준이었다.

전쟁 말기의 고지전에서는 M26이나 M46보다 가벼운 공차중량으로 인해 M1 76.2mm 전차포와 M2HB 중기관총을 이용한 화력 지원에서도 더 요긴하게 운용되었고 휴전 이후에는 한국군에 388대가 인도되어 5.16 군사혁명 당시 제1 해병여단 전차중대의 차량이 한강교를 넘어 서울로 진입하는 등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 적잖은 입지를 남긴 전차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기간 중 총 309대가 투입돼 전차전의 대부분을 소화하고 진격의 선봉에 섰던 M26과 M46이지만 사실상 전차전의 대부분은 먼저 도착해 있던 M26이 대부분 치러버린 상태였다.

제2차 세계대전 말엽에 등장해 간신히 독일 전차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의 전차전을 치르는데 그쳤던 M26은 한국전쟁을 통해 T-34/85와의 격전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M46은 사실상 북한 기갑전력이 소멸된 상황에서 들어와 보병 지원 및 중국 인민지원군의 육탄 공격에 휘말리는데 그침은 물론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사실상 후속 M47에게 자리까지 내주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전쟁 말기에는 묵직한 공차중량 덕분에 고지전에서의 주력을 사실상 M4A3E8에게 내주기까지 했으니 이보다 더한 굴욕은 없었을 것이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미육군)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미육군)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미육군)

 

[디펜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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