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사단 청성부대의 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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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사단 청성부대의 분전
  • 이승준 기자
  • 승인 2020.03.14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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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전선에서 분전한 6사단 청성부대

개전 초기의 참패로 인해 한국군은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북한군 제1 군단에게 내주고 말았다.

독,소전 종전 5년 만에 처음으로 선 침략전쟁의 선봉으로서 T-34/85는 뛰어난 활약을 펼쳐 전차가 전무한 한국군을 공황상태로 몰아넣었다.

이 공로로 제105 전차여단은 전차사단으로 승격되는 영예를 얻었지만 부대 규모만 승격되었을 뿐 사실상 소련군의 전차연대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에  전차여단으로 표기한다.

만약 한국군에 M4A3E8 “셔먼” 1개 중대라도 있었다면 이처럼 참혹한 패배를 당하지는 않았겠지만 역사에 만약이란 것이 없는 만큼 너무나도 뼈아픈 역사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6사단 청성부대 마크 (사진: 디펜스투데이)
6사단 청성부대 마크 (사진: 디펜스투데이)

춘천, 제6 보병사단 “청성부대”의 분전

제2, 5, 7 보병사단 및 육군사관학교 생도대, 포병학교 기간병과 교육생 등 긁어모을 수 있는 대로 긁어모은 병력으로 구축한 <미아리 방어선> 붕괴로 수도 서울이 개전 3일 만에 함락된 서부전선!

제105 전차여단의 T-34/85들이 시가지를 오가며 승리를 자축하던 시각, 동부전선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김종오 대령의 제6 보병사단 “청성부대”가 김광협 중장의 북한군 제2군단을 맞아 분전했기 때문!

당시 북한군 제2군단의 선봉 제2보병사단, 제12보병사단은 춘천과 인제 방면을 일제히 돌파해 홍천군을 함락시킨 후 바로 수원 방향으로 서진하여 서울 지역에 집중된 T-34/85와 더불어 176대의 Su-76 대전차 자주포. - T-70 경전차의 차체를 이용해 76.2mm 사단포를 탑재해 대전차 전투와 포병 지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경우에 속하며 한국전쟁 기간 중에도 매복 전투로 미군 전차를 격파하는 전과를 거두었지만 춘천과 홍천 지구 전투에서는 혹심한 피해를 입었다.

한국군 주력부대의 퇴로를 차단한 후 제1 군단과 더불어 포위/격멸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만약 이를 저지해야할 제6보병사단이 무너져 내렸다면 한국전쟁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과는 정반대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6보병사단 “청성부대” 장병들은 이러한 우려와 달리 개전 초기부터 엄정한 군기와 치밀한 전투준비 태세로 맞섰다.

약 84km에 달하는 관할지역을 제2, 7 보병연대만으로 방어하고 있던 제6보병사단이었지만 사단장 김종오 대령의 지시로 평시 치밀한 훈련과 진지 공사를 통해 방어준비를 철저히 수행해왔다.

 

개전 직전 제6 보병사단의 진지 공사 현황

- 제2 보병연대 : 제8 보병연대와 진지 교대 과정에서 인수한 목제 유개호( 有蓋濠 ) 보수/유지, 철조망 및 대인 지뢰지대 미 설치

- 제7 보병연대 : 춘천 시민 및 학생 지원으로 진지공사 실시, 봉의산 등 총 9개 콘크리트 유개호 9개소 완공, 각 중대별 목제 유개호 2~3개소 구축, 진지 전방 철조망/중간지대 대인 지뢰 매설

그 결과 개전과 동시에 38도선을 넘어 남진한 리청송 소장의 제2보병사단은 춘천 지구에서 요충지인 모진교(춘천시 사북면 원포리 소재, 1965년 춘천댐 완공 후 수몰)를 돌파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곧 임부택 중령(육군사관학교 1기)의 제7보병연대로부터 거센 저항을 받아 격퇴당하고 말았다.

제7 보병연대 대전차포 중대 2소대장 심일 소위(육군사관학교 8기)는 옥산포(춘천시 사농동, 일명 ‘무른데미’)에서 제2보병사단의 Su-76 대전차 자주포 2대를 공격했다고 한다.

 

북한군 제 2보병사단과 제 12보병사단의 패배

제2보병사단장 리청송 소장은 개전 당일에 춘천을 점령한다는 목표로 5번 국도를 따라 옥산포 일대를 공격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이 공격은 유리한 지점을 점령한 채 포진한 이금열 중위(육군사관학교 8기)의 제16 포병대대 2포대와 심일 소위의 소대가 방어하고 있었다.

춘천 전투 초반 2일 간 북한군 제2보병사단은 사단 전체전력의 40%를 손실해 사실상 전투력이 마비되어버렸고 화천에 주둔하고 있던 제15보병사단의 증원이 시급할 지경에 이르렀다.

제2군단장 김광협 중장은 부랴부랴 제12보병사단의 2개 보병연대와 독립전차연대의 T-34/85 10대를 춘천으로 투입해야 했다.

한편 홍천 방면을 공략하던 제12보병사단은 원주에서 증원된 제19보병연대와 합세한 제2보병연대의 저항을 받아 진격에 차질을 빚던 차에 28일, 홍천 말고개에서 조달진 일병을 비롯한 육탄 11용사가 81mm 박격포탄과 수류탄, 화염병을 이용한 특공을 받아 Su-76 대전차 자주포 4대를 손실하고 6대를 노획당하는 망신을 당했다.

서부전선의 제1 군단이 보여준 화려한 전과에 비해 중부전선의 제2군단은 완전히 피를 보고 있었고 금쪽같은 대전차 자주포를 10대 이상 손실한 상태였다.

결론적으로 이 춘천과 홍천 지구 전투를 통해 제6 보병사단 “청성부대”는 6월 29일, 홍천 이남으로 철수할 때까지 북한 제2 군단의 선봉 2개 보병사단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 진격을 저지시키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서부전선의 제1, 2, 5, 7 보병사단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로 북한군 수뇌부는 패전의 책임으로 김광협 중장과 제2 보병사단장 리청송 소장, 제12 보병사단장 전 우 소장을 모두 보직 해임했다.

[디펜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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