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리 전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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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리 전차전
  • 이승준 기자
  • 승인 2019.11.2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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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리에서 전멸한 북한군 T-34/85 전차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미육군)

미해병대의 북한군 T-34/85 전차 격파

1950년 8월 17일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오곡리에서 T-34/85의 위기가 시작되었다.

미 제1 해병여단의 M26 전차중대는 이 날 오곡리 일대의 북한군 제6 보병사단 전면을 강타해 14.5mm PTRD 대전차 소총 10여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를 격퇴하기 위해 제6 보병사단은 배속된 제105 전차여단 107 전차연대의 T-34/85 1개 중대( 4대 )를 급히 현지에 투입시켰는데 운 없게도 진해만에 정박 중이던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미 해병 항공대 소속 F4U 코르세어에게 최후미의 차량을 손실당했다.

공습이 감행되자 T-34/85에 탑승한 보병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남은 3대만 M26 “퍼싱” 전차들을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이 무모한 돌격에 대해 미 해병대는 M26 “퍼싱” 전차 5대를 그랑빌 스위트 중위의 지휘 하에 출동시켰다.

그랑빌 스위트 중위는 태평양 전쟁의 개전을 알린 1941년 12월 7일의 진주만 공습 당시 부상을 당했다가 야전병원에서 회복한 후 괌과 이오지마 전투에서 미 해병대 전차부대 부사관으로 복무한 후 장교로 진급한 베테랑 전차병이었다.

스위트 중위의 M26을 포함한 5대의 차량을 발견한 T-34/85 3대는 해병대의 참호진지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동안의 전투 경험을 통해 미군을 깔보고 있던 북한군 전차병들은 경계도 없이 무모하게 도로의 모서리를 돌아 질주하는 어이없는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완벽하게 조준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던 미 해병대 M20 3.5인치 “슈퍼 바주카” 사수와 75mm 무반동총사수는 일제 사격으로 최선두의 T-34/85를 격파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야아~! 저 녀석들, 제법하는데? 우리도 질 수 없다. 소대 돌격하라~!!”

불타는 T-34/85를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은 스위트 중위는 자신의 소대에 돌격명령을 내렸고 때마침 나머지 2대가 돌격해 들어왔으므로 곧 치열한 전차전(戰車戰)이 벌어졌다.

사전에 유리한 위치에서 사격 준비를 갖추고 있던 M26의 M3 90mm 전차포가 불을 뿜자 선두의 T-34/85가 그 자리에서 폭발을 일으키며 불타올랐다.

졸지에 혼자 남은 T-34/85는 불타는 동료 전차를 엄폐물 삼아 퇴각을 시도했지만 이미 2대의 M26으로부터 날아오는 포탄을 피할 수 없었다.

M26 “퍼싱”의 전차병들은 그 동안 T-34/85에게 당했던 전우들의 복수를 하듯 무려 13발의 포탄을 이 전차에 발사했고 이 때문에 T-34/85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파되었다.

이들 T-34/85 1개 중대가 전멸할 때까지 소요된 시간은 겨우 5분!

5분 만에 그토록 무적의 위력을 발휘했던 T-34/85 1개 중대가 전멸당한 것이다.

 

오곡리에서 북한군 T-34/85 격파

하지만 이 오곡리 전차전은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바로 다부동에서 T-34/85의 떼죽음이 시작되었기 때문!

8월 17일 북한군 제13 보병사단은 T-34/85 1개 대대( 14대 )를 앞세워 한국군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 11 보병연대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전략 요충지 다부동으로 진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미 제25 보병사단 27 보병연대는 M26 “퍼싱” 1개 중대와 포병 2개 포대를 지원받아 다부동 북쪽 좌/우의 고지를 장악했다.

당시 다부동 지형은 폭 200~400m의 좁은 골짜기가 가로 놓이고 중앙부를 시내가 흘러내리는 한편 계단식 밭과 개천 제방 등이 복잡하게 배치되어 있어 사실상 전차는 도로를 통해서만 기동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지역을 사수하는 미군은 도로를 통해 진격해 들어오는 T-34/85와 골짜기와 계곡으로 밀려 들어올 북한군 보병들을 경계했다.

8월 18일, 북한군 제13 보병사단은 T-34/85 2대와 Su-76 대전차 자주포 1대를 앞세워 다부동 일대에 야간 공격을 감행했다가 전차 2대를 손실한 채 패퇴했다.

이에 8월 19일을 기해 미 제8군은 제23 보병연대를 증원했는데 8월 21일 야간, 북한군 제13 보병사단이 T-34/85 9대와 Su-76 대전차 자주포를 앞세워 다부동으로 진격해 들어왔다.

이처럼 대규모의 공세는 단순히 보병전력으로 막아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제27 보병연대는 급히 제73 전차대대 C중대의 M26 “퍼싱” 전차들을 투입시켰다.

피아 간 20대가 넘는 전차들이 좁은 다부동 골짜기에서 전차전을 벌였지만 이 전투는 시작부터 북한군의 패배가 예정되어 있었다.

북한군 전차병들은 그간 보병들을 상대해왔던 탓에 장전수는 자연스레 BR-365P 철갑탄이 아닌 고폭탄을 장전해버렸고 덕분에 피격된 M26이 포탄을 튕겨내는 광경에 충격을 받아버렸기 때문.

반면 M26은 간단하게 T-34/85를 일격에 격파할 수 있었다.

결국 5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차전이 끝나고 다음 날 새벽이 밝아오자 다부동 골짜기 일대에는 격파된 T-34/85와 Su-76 대전차 자주포 및 기타 차량들의 잔해가 널렸다.

이 다부동 지구 격전을 통해 북한군 제13 보병사단은 보유하고 있던 T-34/85 14대 중 13대를 손실해 사실상 전차전력을 상실했고 Su-76 대전차 자주포 5대까지 손실해야했다.

제13 보병사단의 주력이 격파되자 그 동안 숱한 희생을 치르며 방어전을 수행해낸 한국군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는 8월 하순 다부동을 미 제1 기병사단에게 인계한 후 팔공산 북부로 이동했다.

[디펜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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