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항공대 초창기 역사
상태바
해군항공대 초창기 역사
  • 안승범 기자
  • 승인 2020.03.18 2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종들

창설기

해취호 사진: 대한민국해군
해취호 사진: 대한민국해군

한국 해군항공대의 시발점은 1951년 불시착한 AT-6G 항공기를 개조하여 제작한 '해취호'이다.
개조완료는 1951년 8월 15일에, 명명식은 8월 25일에 이뤄져 한국해군 최초의 보유항공기로 남게된다.
해취호는 연락, 요인수송등의 비전투임무를 맡았으며 불과 3개월만인 1951년 11월 22일 악천후에 추락하여,
기체를 손실과 조종사 2명이 순직하는 비극을 겪었다.

해취호를 잃었음에도 해군의 항공기보유에 대한 노력은 식지 않았고,
일본제 기자재와 L-5항공기 엔진을 획득하여 1954년 5월 '서해호'로 불리는 최초의 자체제작 항공기인 SX-1기 제작을 완료하게 된다.

서해호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플로트 연결부에 부식이 나타나 항공기의 수명을 위협하는 문제를 노출하게 된다.
당시 부식방지기술은 뛰어난 편이 아니었으므로, 1955년 5월 항공기 운용을 중지하고 기체를 해체하였다.

해군은 57년부터 4대를 제작한 SX-3 '제해호'와 L-19(O-1)를 바탕으로 개조한 '통해호', 그리고 L-19(O-1)소수를 추가도입하며 함대항공대를 창설했지만,
정식도입된 기체가 아님을 들어 미군이 군수지원에 난색을 표함에 따라 1961년 이후 보유기체들은 해경항공대로 이관되었으며, 1963년에는 항공대가 해체되었다.

 

항공대 재창설 이후 트래커 도입

S-2 트래커, 사진 해군
S-2 트래커, 사진 해군

항공대를 해체한 뒤 해군은 규모가 커지는 1970년대를 맞아 1963년 공식해체된 해군항공대를 다시금 부활시켜 해군전력을 증대시키는 방안을 추진한다.
마침 이때는 북한의 고속간첩선들이 한국영해를 마음껏 활보하고 다녔으며,
나아가 북한군이 한국해군 방송선을 공격하여 해군수병 여러명을 살해하고 북으로 끌고가는 '해군 방송선 피격 납북사건'까지 발생한 시기였다.
 
이런상황에서 기존에 보유중인 함정만으로는 영해수호 및 북한해군에 대한 우세를 점하기 어려웠으므로,
미국에서 백구급 유도탄 고속정과 S-2 '트래커'를 제공받아 해상도발에 대응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해군예하 항공부대는 오직 해병항공대 뿐이었으므로, 당장 해군항공대를 재창설하고 S-2를 운용하기엔 준비기간이 필요했다.

따라서 S-2는 해군이 아니라 공군이 도입하게 되었다.

공군에서 도입 운영중에도 해군에서 선발된 항공요원들이 파견되어 꾸준히 S-2 운용교육을 받았으며,
해군에서 파견된 항공요원들이 작전능력을 확보했다고 판단된 1975년부터는 기체들이 순차적으로 해군에 인도되기 시작하였다.
1976년에는 해군항공대를 재창설하면서 공군이 보유중이던 S-2 인수를 완료함과 동시에, 12대를 추가로 신규도입하게 되었다.

한국해군이 도입한 트래커는 S-2A/C/E/F 4종류 였으며 이중 공군에서 인수한 기체는 S-2A와 S-2E이다.
최종적으로 한국해군이 인수한 S-2는 총 31대이며 이중에서 상당량을 사고로 손실한 기록이 있다.

S-2는 2001년까지 해군항공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나, 냉난방장치의 불량으로 작전시 방한복을 착용해야 했으며
유지부품 부족 탓에 계획정비와 동류전환으로 근근히 버텼다고 알려진다.
1995년부터 P-3C 오라이언 업데이트Ⅲ의 도입과 함께 표적예인기로 사용하다 2001년 퇴역했다.

회전익기 도입

알루엣3,사진 이승준 기자
알루엣3,사진 이승준 기자

해군항공대의 회전익기 운용은 육군항공대와 공군에 비해서 늦은 1970년대이다.

처음 도입한 Bell 206은 1974년 3월 29일 전남도 방위성금으로 2대를 도입하여 VIP수송과 조종사훈련에 투입되었던 기체이다.
도입연도만 따져보면, 먼저도입된 SA-319B '알루엣3'보다 빠르다. 90년대까지는 운용되었으며, 2000년대 중반 퇴역한다.

한국해군이 보유했음에도 도입대수가 적고, 비전투용인 탓에 도입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기체다.


이후 해군은 1977년 최초의 대잠헬기 SA-319B '알루엣3' 12대를 도입하여 항공대 증강에 박차를 가한다.
본 기종은 1983년 8월 13일에 북한 공작모선 격침전과가 있다.
본격적인 대잠전 임무에는 기체도 작고 탐지장비가 빈약하였으므로 대잠임무보다는 주로 해상감시, 대함공격임무에 더 많이 사용되었다.
무장은 AS-12 대전차미사일 외 경어뢰, FN사제 기총포드와 2.75인치 로켓포드 등을 장비하였다.
90년대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시 구난임무에도 투입된 바 있다.

한때 비행교육대대가 500MD 헬기 16대를 육군에서 인수하여 교육용으로 활용한 적이 있으며, 1994년 이후 보유기체 전량을 육군에 반납하였다.

[디펜스투데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