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전투의 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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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전투의 미군
  • 이승준 기자
  • 승인 2020.04.02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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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전투 

북한군 제4 보병사단이 천안에서 미 제24 보병사단을 유린하는 동안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을 향해 남하 중이던 북한군 제3 보병사단 배속 109 전차연대는 7월 9일, 연기군 전의면 북방에서 이동 과정에서 11대의 차량 중 5대를 공습으로 손실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는 미공군의 활동이 점차 증가된 것을 의미했고 앞으로 개전 초반과 같은 쾌속 진격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었지만 아직 승세는 북한군에게 있었다. 

미 제24 보병사단장 딘 소장은 조치원 사수를 위해 제21 보병연대 3대대를 전의면 남방 3.5km의 고지대와 능선에 배치시키는 한편 사단에 배속된 제78 전차대대 A중대의 M24 “채피(Chaffee)” 경전차 14대를 투입했다. 

7월 10일, 북한군 제3 보병사단은 제21 보병연대 3대대를 완전히 포위해 퇴로를 차단한 후 맹공을 퍼부어 방어선을 붕괴시켰다. 

이 전투에서 미군 3대대는 병력의 60%, 장비 90%를 손실하는 대패를 당했는데 더 심각한 점은 바로 개전 이래 최초 전차전이었다. 

3대대가 붕괴되자 78전차대대 A중대의 M24 “채피” 경전차 1개 소대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출동하던 도중 제109 전차연대의 T-34/85들과 조우했다. 

사전에 준비를 갖추고 있던 M24 “채피” 경전차가 먼저 선두의 T-34/85를 향해 75mm M6 전차포탄을 잇따라 사격, 명중시켰다. 

하지만 T-34/85의 경사장갑은 경량 전차포탄으로 관통하기에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도리어 반격탄을 얻어맞은 M24가 그 자리에서 대파되었다. 

불길에 휩싸인 동료 전차를 목격한 미군 전차병들은 T-34/85를 향해 다방면에서 공격을 감행해 간신히 1대를 격파하는데 성공했지만 추가로 1대가 불길에 휩싸였다. 

결국 스코어 1 : 2, M24의 패배였다. 

간신히 살아남은 M24 “채피” 경전차들은 퇴각하는 제21 보병연대 병사들을 엄호하며 공주로 퇴각했고 7월 11일 제34 보병연대에 배속된 1개 소대가 공주 의당면 수촌리에서 북한군 제3 보병사단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들 전차들은 곧 3대가 격파돼 궤멸당하고 말았는데 장갑이 얇은 경전차의 한계로 인해 적잖은 수가 북한군의 소련제 14.5mm PTRD 1941 대전차 소총 및 45mm 대전차포 사격에 관통 당했기 때문이다. 

이후 M24 “채피” 경전차는 북한군의 대전차포나 대전차 소총 진지만 봐도 이들의 유효 사정거리 밖으로 물러났고 덕분에 제24 보병사단의 병사들의 불신감만 더 쌓이게 되었다. 

결국 한국전쟁 초반에 투입된 제78 전차대대 A중대 소속 M24 경전차 14대는 8월 2일까지 대부분의 차량을 손실해 사실상 재편성을 해야했다. 

북한군 전차병들은 85mm 포탄에 불타오르는 M24 “채피” 경전차들을 바라보며 사기가 충천해졌고 미군 전차를 깔보았다. 

이로써 북한군 제3 보병사단과 제109 전차연대는 경미한 손실로 7월 10일 전의면, 12일에는 조치원을 점령함으로써 미 제24 보병사단의 금강 방어선을 붕괴시키는 전과를 거두었다. 

더욱이 7월 13일 야음을 기해 뗏목과 거룻배를 징발해 금강을 도하한 북한군 제3 보병사단 선발대는 곧바로 미군 제52 포병대대를 급습해 궤멸시킨 후 16일 대전(현 대전광역시)으로 진격했다. 

때마침 제4 보병사단이 논산을 석권한 후 대전으로 북상하고 있었으므로 딘 소장은 7월 15일, 사단 전 병력을 대전으로 철수시켜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다. 

미 제24 보병사단은 그 동안의 패전으로 사기가 말이 아니었지만 공격하는 북한군 제3, 4 보병사단 역시 미 공군의 공습으로 적잖은 수의 전차와 차량, 병력을 손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대전 방어는 한번 시도해 볼만했다. 

한편 북한군 제107 전차연대는 금강 철교가 수리된 7월 19일, 금강을 도하해 1개 중대를 제5 보병연대에 배속시켜 유성 방면에서 공격하는 한편 주력은 제16, 18 보병연대와 함께 논산, 금산 방면에서 대전을 타격했다. 

제109 전차연대는 제3 보병사단과 함께 대전 서북방 및 갑천 방어선과 대전 비행장을 타격한 후 제4 보병사단과 합류할 예정이었다. 

1950년 7월 19일, 북한 공군이 대전 상공에 출현, 영동철교와 대전 비행장 일대를 공습함으로써 대전 전투가 발발했다. 

공군의 지원 하에 공격 준비대형으로 전개한 북한군 제3 보병사단이 미 제24 보병사단의 시선을 빼앗는 사이 20일 오전 3시를 기해 제4 보병사단 5 보병연대가 T-34/85 4대를 앞세워 유성 방면으로 돌격해 들어왔다. 

동시에 북한군 제3 보병사단과 109 전차연대의 T-34/85들도 갑천 일대에 공세를 감행, 미 제24 보병사단의 방어선을 붕괴시켰다. 

순식간에 30대가 넘는 T-34/85들이 종횡무진으로 대전 시가지를 질주하며 85mm 포탄 세례를 퍼붓자 미군은 공황에 빠지며 보문산 일대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군에게는 히든카드가 있었으니 바로 본토에서 긴급 공수된 M20 3.5인치 “슈퍼 바주카”였다. 

M20 3.5인치 “슈퍼 바주카” (사진: 디펜스 투데이)
M20 3.5인치 “슈퍼 바주카” (사진: 미육군)

원래 독일군의 티거나 티거Ⅱ 중전차를 격파하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실전 검증이 미뤄졌던 이 신무기가 때마침 한국으로 투입된 것!

병사와 부사관들이 공포에 질려 꼼짝도 못하자 딘 소장은 자신이 직접 이 신무기를 짊어지고 보병 지원없이 단독으로 질주하는 T-34/85를 조준 사격해 격파했다.

그토록 격파되지 않던 T-34/85가 불타오르자 병사들의 사기가 회복되었다.

이 M20 슈퍼 바주카를 이용해 미 제24 보병사단은 총 8대의 T-34/85를 격파했는데 하필이면 포탄이 바닥나는 바람에 더 이상 전과를 확대할 수 없었다.

그나마 F-51D “무스탕” 전투기 편대가 논산 방면에서 진격 중이던 제107 전차연대 본대를 공습해 7대의 T-34/85를 격파한 것이 위안이었지만 여전히 20대 이상이 대전 시가지에서 작전 중이었다.

결국 17시 55분을 기해 딘 소장은 제24 보병사단의 잔존 병력에게 철수명령을 하달하고 퇴각했지만 하필이면 퇴로인 세천 터널 일대를 봉쇄하고 있던 북한군 제4 보병사단 18 보병연대의 매복에 걸려들고 말았다.

이 공격으로 제24 보병사단은 사분오열돼 영동으로 퇴각했지만 딘 소장만 낙오돼 산야를 헤매다가 전북 진안에서 북한군의 포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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