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105전차여단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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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105전차여단의 최후
  • 유진우 기자
  • 승인 2020.05.04 0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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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디펜스 투데이)

제105 전차여단의 최후

경인가도 일대에서 예비 기갑전력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 동안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 제105 전차여단은 마침내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서울 탈환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낙동강 전선의 북한군 보병사단들에 전달되면서 북한군의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졌고 이를 간파한 미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은 즉각 미 제1 기병사단에 배속된 제70 전차대대와 제25 보병사단에 배속된 제89 전차대대의 M26 퍼싱과 M4A3E8 셔먼 전차들을 선두에 세웠다.

이 공세를 지휘한 지휘관인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과 미 제1 기병사단장 호바트 게이 소장은 모두 조지 스미스 패튼 주니어 중장의 휘하에 있었던 이들이었으니 그야말로 대규모 기동전이 펼쳐지는 찰나였다.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 동상 (사진: 디펜스 투데이)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 동상 (사진: 디펜스 투데이)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 동상 (사진: 디펜스 투데이)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 동상 (사진: 디펜스 투데이)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 동상 (사진: 디펜스 투데이)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 동상 (사진: 디펜스 투데이)

패튼 중장의 참모장을 지낸 게이 소장은 9월 20일, 제7 기병연대장 세실.N.니스트 대령에게 1대대를 다부동으로 진격시키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제7 기병연대 1대대는 유명한 리틀 빅 혼 전투에서 시팅불이 이끄는 수 족 인디언 3,500여명에게 포위당해 전멸당한 조지 암스트롱 카스터 중령이 지휘하던 부대로 유명한데 이 때의 대대장은 피터.D.클레이노스 중령이었다.

이에 따라 클레이노스 중령은 오전 9시를 기해 공세를 감행했지만 북한군은 도로에 지뢰를 매설한 후 고지의 7~8부 능선을 중심으로 구축한 방어진지에서 DP, M1910/30 “맥심” 중기관총과 82mm/120mm 박격포를 동원해 격렬하게 저항했기 때문에 대대의 진격은 완전히 돈좌당했다.

이에 따라 베이커 중위의 제70 전차대대 C중대가 급히 1개 소대를 투입해 진격을 속행했지만 오후까지 겨우 3km 전진하는데 그쳤고 이 과정에서 선두 차량이 대전차 지뢰를 밟아 주저앉는 바람에 공세는 실패로 돌아갔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게이 소장은 즉각 자신의 지프를 타고 전장으로 달려와 현지 지형 정찰을 한 다음 왜관 북방에 위치한 303 고지 서쪽으로 우회해 강을 따라 전진하도록 계획을 수정했다.

이에 따라 클레이노스 중령은 왜관-도개동 산길을 따라 행군해 저녁 무렵 다부동 서쪽 6km 지점에 위치한 도개동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1대대 병사들은 항공 공격으로 격파된 T-34/85를 비롯한 북한군의 각종 야포와 차량, 시체더미를 발견했다.

동시에 다부동 남쪽에서 왜관으로 진격하던 제임스 린치 중령의 제7 기병연대 3대대는 북한군의 박격포와 야포 사격을 우려한 연대장의 지시에 따라 차량에서 하차해 도보 행군을 함으로써 병사들의 피로 증가는 물론 예정시간보다 늦게 도개동에 도착하는 상황에 처했다.

사단장이 얼마나 성질 급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던 부사관과 병사들은 만일의 상황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연대장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별 도리가 없었다.

3대대가 도개동에 도착할 무렵 1대대를 따라잡은 연대장 니스트 대령은 전방의 고지에서 북한군의 격렬한 사격이 이뤄지자 공격을 중단하고 1, 3대대에 현 위치에 숙영지를 구축( ?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1대대장 클레이노스 중령이 지뢰 폭발로 부상을 당했다 )

제7 기병연대가 공세가 아닌 숙영지 구축 작업에 착수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사단장 게이 소장은 열화와 같이 분노, 즉각 연대장 니스트 대령을 보직해임하고 제77 포병대대장 윌리엄 해리스 중령을 임명하는 전장 인사( 戰場人事 )를 단행했다.

그러나 진격은 지지부진해 다부동을 공격하던 제8 기병연대가 북한군 제13 보병사단의 저항을 받아 배속된 제70 전차대대의 M26 “퍼싱” 7대를 손실하는 피해를 입는 등 9월 20일의 상황은 일진일퇴의 공방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9월 23일, 낙동강 전선에서 저항하던 북한군에 총 퇴각 명령이 하달되자 상황은 미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하루 앞선 9월 22일, 워커 중장은 그 동안의 지리한 대치를 일단락 지을 대 공세를 명령했고 이에 따라 게이 소장은 즉각 3대대장 린치 중령에게 제70 전차대대 C중대와 제77 포병대대의 1개 포대, 그리고 공병대대 B중대를배속시켜 특수임무부대를 편성시켰다.

이것이 바로 린치 특수임무부대( Task Force “Lynch” )로 신속한 진격을 통해 북한군을 추격하는 것이 목표였던만큼 편성 당일인 오전 8시에 다부동을 출발해 북진에 나섰다.

오전 12시를 기해 경상북도 선산군에서 낙동리로 북상한 린치 특수임무부대는 야간 이동 중 의아물체에 포격을 가했는데 이것이 대폭발을 일으켜 주위를 훤히 밝혔다.

바로 북한군의 탄약수송차량이 피격된 것인데 때마침 강을 건너 퇴각하려는 북한군의 대열이 그대로 이들에게 노출되었다.

M26 “퍼싱”의 90mm 전차포와 M4A3E8 “셔먼”의 76.2mm 전차포가 불을 뿜으며 하차한 보병들의 M1 개런드와 M1919A4 기관총이 탄막을 형성하자 순식간에 강은 피로 붉게 물들었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주변에는 북한군이 버리고 간 T-34/85 2대와 트럭 50여대, 그리고 각종 장비와 시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9월 23일부터 시작된 공병대의 교량보수가 완료되자 24일 오전 4시를 기해 신속하게 낙동리를 출발한 린치 특수임무부대는 충청북도 보은군에 도착했고 25일 하루 동안 휴식과 재정비를 가진 후 인천상륙작전 이후 남진을 시작한 제10 군단과 연계하기 위한 북상에 착수했다.

그런데 군단으로부터 더 이상 북진을 하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사단장 게이 소장은 이에 항의하려 했지만 통신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베이커 특수임무부대 편성하여 투입

이에 따라 게이 소장은 진격을 좀더 신속하게 할 목적으로 베이커 중위의 제70 전차대대 C중대에게 연대 수색중대 3소대를 배속시킨 “베이커 특수임무부대”를 편성시켜 무조건 북진하라는 명령( 누가 패튼 부하 아니랄까봐 )을 내렸다.

9월 26일 오전 11시 30분, 약 6대의 M26 “퍼싱”으로 편성된 베이커 특수임무부대는 수색중대 3소대 병력을 태운 뒤 북진을 개시했다.

당일 오후에 충청북도 청주시를 탈환한 베이커 특수임무부대는 18시를 기해 진천군 서남부에 위치한 입창리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연료가 바닥나 잠시 진격이 정지되었는데 때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북한군의 연료보급트럭을 노획함으로써 충분한 양의 연료를 급유하는 횡재를 낚았다.

20시를 기해 진격을 재개한 베이커 특수임무부대는 20시 30분을 기해 충청남도 천안시에 진입했고 21시 경에는 오산을 탈환했다.

22시 26분, 오산 북방 6km 지점에서 베이커 특수임무부대는 격렬한 사격을 받아 전차병 1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는데 이들을 공격한 것은 바로 미 제7 보병사단 31 보병연대였다.

비록 야음의 오인사격으로 피해가 발생했지만 마침내 낙동강에서 멈춤 없는 진격을 감행한 미군이 포위망을 완성함으로써 아직 북쪽으로 철수하지 못한 북한군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개전 초 용명을 떨쳤던 제105 전차여단은 이제 T-34/85 23대만을 보유한 초라한 규모로 축소되어 북으로 퇴각했지만 미군이 이들을 맹렬히 추격했다.

특히 대전에서 악연을 맺은 미 제24 보병사단의 19, 21 보병연대가 제6 전차대대를 앞세워 진격하고 있었으니 북한군의 궤멸이 눈앞에 다가온 셈.

9월 26일, 제19 보병연대를 선두로 대전 시가지에 진입한 미 제24 보병사단과 제6 전차대대는 치열한 전차전 끝에 제105 전차여단의 몇 대 안남은 T-34/85를 격파한 후 28일, 서울 탈환과 동시에 대전을 수복했는데 7월 20일의 참패 이후 2개월 만에 이룬 대승이었다.

대전 전투에서 참패해 잔여 전차들을 모두 손실한 제105 전차여단은 추격전 끝에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 일대에서 완전히 와해되었다.

여단장 류경수 소장은 견장을 떼어낸 야전상의만 착용한 채 북으로 도주했고 잠시나마 작은 전격전을 이룩했던 제105 전차여단의 신화는 끝이 나고 말았다.

[디펜스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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