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의 북한군 전차부대 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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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의 북한군 전차부대 재편
  • 유진우 기자
  • 승인 2020.05.07 2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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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전선의 북한군 T-34/85 전차 

많은 희생을 치르기는 했지만 대전 전투를 통해 미군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준 T-34/85! 

그야말로 영광의 정점에 치닫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낙동강 일대로 전선이 집중되자 T-34/85부대에게는 큰 위기가 닥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북한군은 제6 보병사단이 전라도를 석권함으로써 한반도의 90%를 차지한 상태였고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영토는 동서 100km, 남북 140km가 고작이었다. 

만약 T-34/85들이 이 중 한 곳을 돌파해 부산까지 진격한다면 한반도 공산화는 시간 문제였다. 

다만 북한군의 전차 손실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 큰 장애였는데 낙동강에 도착할 당시 제105 전차여단의 3개 전차연대는 70여대의 T-34/85만 남아 이미 50%가 넘는 손실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특히 낙동강 도하 공세 과정에서 공습으로 인한 손실이 급증해 제1차 공세인 8월 공세 때 제105 전차여단의 잔존 전차는 40여대로 급감했다. 

 

국군과 북한군의 낙동강 전선 대치

1950년 8월 1일을 기해 북한군은 <진주, 김천, 점촌, 안동, 영덕>까지 진출하는 전과를 거뒀고 이에 따라 수안보에 야전 사령부를 설치한 북한군 전선 사령부는 즉각 예하 제1 군단을 김천에, 제2 군단을 안동에 배치시켜 부산을 향한 공세토록 했다. 

한편 예비 부대인 제10 보병사단을 낙동강으로 남하시키는 한편 제7, 9 보병사단을 서울시에 집결시킴으로써 예비 사단을 확충했다. 

이에 따라 <왜관 북방~영덕군>을 담당한 북한군 제2 군단은 제13, 15 보병사단을 <한국군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 >정면에 전개시키는 한편 제1 보병사단에 13 보병사단 병력을 배속/증강시켜 <한국군 제6 보병사단 “청성부대”>의 방어선을 공략토록 했다. 

한편 제8 보병사단은 <한국군 제8 보병사단 “오뚜기 부대”>와 대치함으로써 개전 초 최 광 소장의 제1 보병사단과 <백선엽 대령의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에 이은 두 번째 동일 단대호 사단의 대결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제12 보병사단이 한국군 수도 사단 정면에 포진해 공격준비 대형으로 전개하기 시작했고 제5 보병사단이 <한국군 제3 보병사단 “백골부대”>와 대치했다. 

한국군 보병사단과 대치 중인 제2 군단과 달리 제1 군단은 주로 미군과 정면대결을 벌여야했는데 왜관~마산 전역을 담당하면서 자연히 예하 제3 보병사단이 미 제1 기병사단과 대치했고 제4 보병사단은 낙동강 돌출부에서 미 제24 보병사단과 대치해 대전 전투 이래 질긴 인연을 과시했다. 

동시에 전라도를 석권하고 진격해온 제6 보병사단은 마산 서부에서 미 제25 보병사단과 맞대결을 벌일 예정이었다. 

문제는 전선의 첨병으로 활약할 T-34/85의 손실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으로 북한군 수뇌부는 8월 20일까지 20대의 T-34/85와 전차병 100여명을 제105 전차여단에 보충했지만 이 정도로는 택도 없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90대의 T-34/85를 급히 지원받아 제16, 17 전차여단을 창설했다. 

6월에 신규 편성 중이던 제16 전차여단은 7월 15일에 소련으로부터 도착한 46대의 T-34/85로 편성되었다. 

여단장 김철완 소장은 제105 전차여단 참모장 출신으로 서울 함락의 공로를 인정받아 소장 진급 후 제16 전차여단장으로 부임했다. 

제16 전차여단은 제105 전차여단보다 편제가 축소돼 2개 전차대대와 차량화 보병연대, 포병연대로 편성되었다. 

철원에서 2주 간의 기초 훈련을 이수한 제16 전차여단은 8월 7일, 서울에 집결해 15일에 전선으로 출발, 8월 31일을 기해 낙동강 전선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낙동강까지 이동하는데 16일이나 소요된 데는 제공권을 완전히 상실당해 사실상 주간 이동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으로 이런 상황 하에서는 T-34/85의 우수한 기동력과 돌파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한편 지속적으로 훈련만 수행해오던 전차중대의 기간병들을 주축으로 창설된 제17 전차여단은 8월 23일, 43대의 T-34/85를 수령해 전선 투입을 서둘렀다. 

제17 전차여단장 필우창 소장은 독소전 당시 전차병으로 활약, 질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던 독일 기갑부대와 격전을 치르며 베를린 공방전까지 참전한 실전경험이 풍부한 지휘관이었다. 

제17 전차여단은 제16 전차여단과 마찬가지로 2개 대대로 편성되어 화차에 적재된 후 야음을 틈타 낙동강 전선으로 이동했다.

[디펜스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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