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의 주력 7.62mm 기관총 M6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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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주력 7.62mm 기관총 M60 (2)
  • 유진우 기자
  • 승인 2020.05.1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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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용도 기관총의 등장과 고전하는 미군

M60의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군의 주력 기관총  M60 (사진: 디펜스 투데이)
한국군의 주력 기관총 M60 (사진: 디펜스 투데이)

당시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은 불완전한 전력 임에도 불구하고 한 달도 채 안되어 수도 바르샤바 수비대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이후 베르사이유 조약으로 재무장을 엄격하게 제한 당했던 독일군이 어떻게 이런 강력한 군대로 재탄생했는지 세계는 경악했지만 그 중에서도 보병 병과 및 병기계 관련 간부들은 두 종류의 총기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들은 바로 기관단총인 MP 38이었고 다른 하나는 다용도 기관총인 MG 34로 이 중 MG 34가 보여준 능력은 가히 경악스런 것이었다.

하나의 기관총으로 분/소대 지원용 경기관총은 물론 삼각대에 거치하면 중기관총이 되고 부품만 적절히 교체해주면 전차나 장갑차의 차재 기관총 및 함정의 근접 방어화기로도 운용이 가능한 ‘다용도 기관총’이라는 신 장르를 개척한 MG 34는 분명 획기적인 총이었지만 문제는 미군 내부에 파다하게 퍼져있던 하나의 고정관념이었다.

“기관총은 삼각대에 거치해 안정적으로 사격하는 총이다. 양각대를 이용하면 명중률이 너무 떨어지고 지원화기로서의 임무 수행에 적잖은 장애요인이 된다.”

실제 미군이 운용하던 M1917A1이나 M1919는 삼각대에 거치해 사격하는 것을 전제로 설계한 총이었고 양각대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군이 공식 참전할 당시에도 이런 편제는 고스란히 유지되었지만 그것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북아프리카에 상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군과 교전한 미군은 곧 뜨거운 맛을 보았는데 그 선봉에는 바로 MG 42가 있었다.

성능은 우수했지만 생산 공정이 재료 낭비가 심각한 절삭가공 방식이었던 MG 34의 단점을 보완한 신형 기관총인 MG 42는 거친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도 문제없이 잘 작동했고 반드시 3인 1조( 사수, 부사수, 탄약수 ) 혹은 2인 1조가 필수였던 미군의 M1919A4에 비해 필요하면 사수 혼자서 탄약과 총을 휴대할 수 있어 기동성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미군의 M1919A4 역시 나쁘지 않은 총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중기관총이었던 탓에 삼각대에 거치하기 전까지는 문자 그대로 안정된 사격은 꿈에도 상상을 못했으니 고전이 얼마나 심각했을지는 안 봐도 였다.

특히 1943년과 44년에 걸친 유럽 전역에서의 전투에서 MG 34/42는 미군을 철저하게 괴롭혔고 결국 미군은 노획한 MG 42를 자국 제식탄인 .30-06( 7.62mm×63 )탄에 맞춰 개조해 운용해볼 생각을 할 정도였다.
바로 T24로 불리는 시제품이 그것인데 이 개조는 당시 미국의 기술력 부족과 “인치”법과 “미터”법이라는 단위 제도의 차이에서 오는 오류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지만( 일각에서는 자국산 총기를 채용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오류 발생이라는 주장도 있다 ) 그만큼 미군이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본격적인 다용도 기관총의 개발과 M60의 등장

MG 42 개조가 실패로 돌아가자 미군은 결국 독자적인 개발에 착수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바로 1946년에 채용된 T44.
T44는 최대한 모험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여주듯 MG 42와 공수부대 소총인 FG-42를 적절하게 짬뽕시킨 외형과 작동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전체적인 외형은 FG-42와 유사하면서도 급탄 구조는 MG 42에서 차용한 T44는 급탄 덮개가 총몸 상부가 아닌 좌측방에 위치하는 특이한 방식을 채용하고 있었다.

설계한 입장에서는 나름 독창적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문제는 이렇게 측면에서 장전하자면 사수가 급탄 덮개를 닫을 때까지 부사수가 탄띠를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었고 원래 소총이었던 FG-42를 본격적인 기관총처럼 운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컸기 때문에 T44는 1948년에 개발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미군 입장에서는 기존의 M1919A4 계열 총기를 그대로 운용하기에는 다소 벅찬 상황.

다행히 T44의 개발 중단이 확정되던 시점에서 기존 .30-06탄보다 탄피 길이를 12mm 단축시켜 위력 역시 10% 가량 감소시킨 신형 탄환인 T65( 7.62mm×51 )가 채용되자 개발은 다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38도선을 넘어 남침하자 무기가 부족했던 미군은 M1 개런드와 카빈, M3A1 그리스건, M1919A4/A6, M1917A1, BAR, M2HB 등 전형적인 제2차 세계대전 무장으로 3년 동안 북한군과 중국 인민지원군에 맞서 치열한 격전을 벌여야했지만 개발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T52가 그것인데 이 시제품은 1947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나름대로 개량을 거듭하고 있었다.
미군은 T52의 개량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마침내 T52E3를 완성시켰고 이것이 좀 더 개량되어 T161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원래 .30-06을 사용할 수 있었던 T161은 곧 T65로 교체되면서 약간 안정적인 개발을 진행( 아무래도 탄의 반동과 위력이 감소했으니 )할 수 있었고 마침내 T161E1에 이은 T161E3에 이르러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고 제식 채용이 확정되었다.

1957년, T161E3이 제식명 M60으로 미 육군에 정식 채용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뭔가 부족

1946년부터 무려 11년이라는 세월을 시행착오만 거듭해가며 난항을 겪었던 M60은 미국의 자존심 그 자체였다.
실제 제원표상으로 M60은 MG 42의 급탄 방식과 FG-42의 작동방식을 적절히 융합하면서도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T65탄이 장전되는 우수한 총이었다.

특히 길이가 110.49cm에 불과하면서도 56cm의 총열( MG 42는 53.3cm, FN/MAG 58은 54.6cm )을 확보해 사정거리와 관통력을 전혀 상실하지 않았다는 점은 오늘날 세계 다용도 기관총들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다.

중량 역시 10.432kg으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PK가 등장하기 전까진 동시대의 다용도 기관총들 중 가장 가벼운 축에 속했고 발사 속도가 분당 550발로 느리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성능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M60의 생산에 착수하면서 자신감이 가득 찼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M60 역시 마찬가지로 분명 제원표상으로는 준수한 성능의 총이었지만 막상 실전 운용을 해보니 문제점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우선 M60의 급탄 기구에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사격 과정에서 급탄 갈퀴와 지레의 힘이 약하다 보니 종종 탄 걸림이 자주 발생했고 특히 탄띠가 축 늘어질 경우 증상이 더 심각해졌다.

이런 문제점은 베트남전에 투입된 총들에서 심각하게 부각되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지에서는 C-레이션 깡통을 급탄 받침대에 부착하는 응급수단을 채택한다.

두 번째는 가스 작동 방식이었는데 가스 피스톤을 반대로 결합하면 총이 단발로 발사되는 기염을 토했던 것.
M60을 분해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부품은 절대 반대로 결합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Mk.43에서 개량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무시못할 수량이 기존 가스 피스톤을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주의할 점이다.

세 번째는 가스관.
잘 아시다시피 M60은 가스 조절기가 달려있지 않아 가스압력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순수하게 렌치를 이용해 가스관 마개를 조여주어야 했는데 제대로 작동하게 하자면 정말 더 이상 조여지지 않을 때까지 힘을 내야했지만 반대로 사격 후 손질을 위해 분해할 때는 대략난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네 번째는 불편한 총열 교환인데 BAR과 마찬가지로 양각대를 총열에 부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이다.
기왕 총열을 교환하는 김에 양각대도 딸려가는 것은 나쁘지 않은 발상이지만 문제는 양각대는 단순히 사격 시 총을 지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총열을 교환하자면 자연 총몸은 현 상태 그대로 있어야 하는데 양각대가 지탱해주지 않고 딸려나가 버린다면?
아무 것도 지탱해주지 않는 총몸은 그대로 먼지와 불순물이 가득한 지면으로 떨어지게 된다.

안 그래도 지속적인 연발 사격으로 총몸 내부에 탄매와 이물질이 가득한 판국에 외부의 먼지와 불순물, 흙이나 모래, 진흙이 들어와주면 문자 그대로 총은 작동불량을 확실하게 보장받는 셈이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수는 차탄 장전과 조준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완벽하게 상실해야 했다.

이 때문에 베트남전에 투입된 미군의 M60 사수는 총열을 교체해가며 전투를 치르기 위해 쓰러진 나무에 총을 거치하여 지탱하는 방법을 쓸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가 또 있었는데 바로 총열에 손잡이가 달려있지 않은 점!
M60은 설계 당시 BAR처럼 들고 쏘기 쉽도록 총열 덮개를 부착했다.
문제는 이 총열 덮개 위에 냉각속도를 가속화시킨다면서( 실제로 효과는 별로 없었지만 ) 방열판을 부착한 것이 화근이었다.

방열판이 부착되다 보니 총열에는 문자 그대로 양각대와 가스관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부착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브렌이나 FN/MAG 58 등에는 기본적으로 부착된 손잡이가 제외되었다.

덕분에 부사수는 총열 교환을 위해서는 반드시 석면수갑을 착용해야 했다( 물론 급할 경우 맨손으로 잡아 뽑으면 되겠지만 이미 500℃ 이상으로 달아오른 총열에 살점이 닿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상상에 맡긴다 )

(사진: 디펜스 투데이)
MG42 (사진: 독일 연방군)

이 점은 독일의 MG 42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결정적인 부분은 MG 42는 양각대가 총열 덮개에 달린 반면 M60은 교환할 총열에 직접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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