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의 포켓전함

제2차 세계대전에 독일해군이 운용한 장갑함

2020-03-12     이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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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적으로 영국해군에 비해 열세였던 독일해군의 사정을 대변해주는 장갑함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

크기는 순양함보다 약간 큰 정도지만 전함에서나 운용할 법한 283mm 함포를 탑재하면서도 속도는 순양함급의 28노트를 발휘한다.

 

장갑함의 출격!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와 '도이칠란트'는 영국의 해상 보급선을 차단하기 위해 은밀하게 도버 해협을 통과하여 남대서양으로 진출했고 M.S 아프리카 쉘을 격침시킨다.

   라플라타강의 전투는 주인공인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의 건조와 취역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전 지식을 숙지하는 차원에서 간단하게 장갑함의 등장과 초창기 활약을 간략하게 소개하도록 하겠다.

   여러분은 혹시 판저 쉬페( Panzer Schiffe, 장갑함 )라는 용어를 들어 보셨는지?

  오늘날 세계 각국의 해군에서 그 명칭은 둘째 치고 “이런 배도 있었나?”라는 의아한 반응이 나오게 하기 충분한 희한한 명칭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중 이런 희한한 배를 3척이나 운용한 국가가 있으니 바로 독일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틀란트 해전"에서 해군 강국인 영국 해군을 상대로 분전을 펼쳤지만 이후 대서양 진출이 사실상 어려워짐은 물론 전쟁 그 자체에서 패전함으로써 더 이상 대양 해군을 건설하기 어려워진 독일!

  그러한 독일이 아돌프 히틀러 총통의 집권과 더불어 재무장을 시작했지만 이미 영국 해군은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세계 최강의 함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장차 이들을 상대해야할 “크릭스마리네( Kriegsmarine, 독일 해군 )”는 사실상 수적인 열세에 직면해버렸고 당연히 전함과 순양함의 집중 건조가 필수였지만 한정된 자원과 물자로 잠수함은 물론 각종 수송선과 구축함까지 건조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탓에 이마저 여의치 못했다.

 

장갑함의 등장

  사태가 이렇게 되자 독일 해군은 한 가지 변종을 내놓게 되었으니 바로 “장갑함”이었다.

  독일 해군, 아니 세계 해군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 변종은 외형적으로는 중순양함에 해당된다.

  이런 함정은 당시 15척의 중순양함과 49척의 경순양함을 보유하고 있던 영국 해군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이제 갓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것”에 불과했지만 그 내막을 조금 더 살펴보면 적잖이 소름을 끼치게 하기 충분했다.

  일반적인 순양함이 평균 150~200mm 정도의 주포를 탑재한 반면 독일 해군의 장갑함에는 52구경장 283mm 포가 탑재되었기 때문이다.

  부무장 역시 강력해 55구경장 150mm포 8문과 65구경장 105mm FLAK 38 대공포 6문이 탑재되었으니 이 쯤되면 단순한 중순양함으로 분류하기가 애매해진 셈.

  이렇게 강력한 무장을 탑재하면서도 속도는 평균 26~28.5 노트(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 도이칠란트/아드미랄 쉐어는 28/28.3 노트 )라는 쾌속을 발휘했으니 이쯤되면 영국 해군도 긴장을 늦추지 않을 수 없었고 어지간한 해군 분류기준으로 치자면 중순양함에 해당되는 “장갑함”을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전함이라 하여 “포켓 전함( Pocket Battleship )”이란 명칭을 붙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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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장갑 방어력은 쾌속을 위해 희생돼 경순양함 수준에 불과했고 이 정도로는 200mm는커녕 150mm포나 간신히 막아낼 수준이었기 때문에 독일은 이를 극비에 부쳤고 영국 해군은 라플라타 해전을 통해 간신히 알아차릴 정도였다.

  1936년까지 독일은 도이칠란트, 아드미랄 쉐어,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 총 3척의 장갑함을 취역시켰지만 이 정도로는 60척이 넘는 영국 해군의 순양함대와 정면 대결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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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함의 임무

당연히 독일 해군의 수장 에리히 레더 제독의 입장에서 이 3척의 장갑함만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임무는 단 하나였다.

  "대서양을 통과해 영국 본토로 진입하는 상선들을 격침시켜라!! 그리하면 영국의 해군력이 이들을 호위하기 위해 분산될 것이다!! 그라프 슈페는 적도 남단으로, 도이칠란트는 북대서양으로 이동하라!!"

  이미 개전 직전, 도버해협을 통과하여 중부 대서양으로 진출해 있던 도이칠란트와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에게 부여된 최적의 임무라 할 수 있는 이 결정으로 비무장 혹은 경무장이 고작이었던 영국 상선들의 운명은 일단락된 셈이었고 이 2척의 장갑함은 부여된 임무를 아주 충실하게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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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9월 26일부터 작전에 돌입한 한스 랑스도르프 대령의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 는 9월 30일에 배수량 5,051톤의 상선 SS 클레멘트( Clement, 1934년 건조 )를 격침시키는 전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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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에는 영국령 아센션섬 동남동 480마일 해상에서 배수량 4,651톤의 SS 뉴튼 비치( Newton Beech, 1925년 건조 )를 나포한 후, 10월 7일, 케이프 타운~프리 타운 사이의 해상에서 배수량 4,222톤의 SS 애쉴리( Ashlea, 1929년 건조 )를 덤으로 나포하는 전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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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 두 척의 선박을 끌고 다녔다가는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의 차후 작전에 적잖은 차질이 빚어질 것이 안 봐도 뻔했다.

  결국 10월 8일, 뉴튼 비치와 애쉴리의 승무원들이 전원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로 이송된 후 2척의 선박은 앙골라 인근 해상에서 격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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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3척의 영국 선박을 격침시키는 전과를 거둔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는 항해를 하던 중 10월 10일, 동아프리카 해상에서 배수량 8,196톤의 SS 헌츠맨( Huntsman, 1921년 건조 )과 조우했다.

  최대 속도가 13노트에 불과한 헌츠맨의 수상 주행속도로는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로부터 도주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었고 결국 이 상선 역시 나포되는 신세가 되었다.

  한스 랑스도르프 대령은 남대서양상에서 벌어진 이 호화로운 전과의 만찬에 흡족해했고, 10월 14일에는 헌츠맨을 나포한 지점의 남서쪽 해상에서 보급선 “알트마르크”와 조우해 재급유를 받는 한편 10월 18일, 그 동안 잡은 포로들을 알트마르크호로 이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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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나포된 헌츠맨은 146m×17.68m×10.69m의 큼직한 선체 덕분에 독일 해군의 보급선으로 운용되다가 12월 5일, 세인트 헬레나섬 남서쪽 650마일 해상에서 격침되었다.

충분한 물자 보급을 받은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는 이후 10월 22일, 세인트 헬레나섬과 서부 아프리카 사이의 루데리츠 베이 서쪽 600마일 해상에서 배수량 5,299톤의 M.V 트레베니언( Trevanion, 1937년 건조 )을 격침시켰다.

본토로 향하는 길목을 틀어막은 독일 장갑함의 활약으로 졸지에 선박들을 다수 손실한 영국 해군은 난리가 났지만 10월 28일, 알트마르크호에 트레베니언의 포로들을 인계한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는 11월 14일 배수량 893톤의 네덜란드 소형 증기선인 홀란트( Holland )를 격침시켰다.

 그리고 11월 15일에는 배수량 706톤의 소형 유조선 M.S 아프리카 쉘( Africa Shell, 1939년 건조 )을 격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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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펜스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