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의 영등포 전차전

2020-05-04     유진우 기자

미 제 1 해병연대의 영등포 전투

9월 18일, 미 제1 해병연대는 영등포 외곽에서 북한군 제18 보병사단 70 보병연대의 발악적인 저항을 분쇄했다.

서울을 향해 오는 미 해병대와 한국 해병대에 맞서 북한군은 시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시가지 곳곳에 바리케이트를 구축하는 한편 제18 보병사단과 42 전차연대의 잔여 차량 등 긁어모을 수 있는 전력을 최대한 집결시켰지만 중과부적 그 자체였다.

9월 20일, 서울 탈환을 위해 영등포로 진입한 제1 해병연대를 맞아 북한군은 덕고개 일대에 보병 1개 대대와 T-34/85 5대를 투입해 역습을 감행했지만 전차 3대를 손실하고 1대를 노획당하는 피해만 입은 뒤 격퇴당했다.

9월 21일에는 영등포 방면으로 T-34/85 5대가 돌격을 감행했다가 해병대원들이 휴대한 M20 3.5인치 “슈퍼 바주카” 사격을 받아 1대가 격파되고 2대를 반파당하는 손실을 입었을 뿐 공세 자체는 실패로 돌아갔다.

9월 22일, 영등포 방면에서 북진한 미 제1 해병연대는 미처 자폭시키지 못한 T-34/85 1개 중대분을 노획하는 횡재를 거두기도 했는데 이후 한강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원거리 포격전으로 T-34/85 3대와 대전차포 6문을 격파했다.

서울 방어전 과정에서 북한군은 몇 안되는 T-34/85를 집중시켜 운용하는 것이 아닌 중대 단위로 축차투입하는 실책을 범했다.

만약 이 차량들이 집중 운용했다면 설령 이기지는 못해도 미 해병 전차대에게 적잖은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사실 M26 퍼싱이 투입된 상황이라면 북한군도 122mm D-25T 전차포를 갖춘 IS-Ⅱ “스탈린”으로 응수해야했지만 중공에만 50대가 판매된 상황이라 별수가 없었다.

이로써 미 제1 해병사단은 상륙 후 4일 동안 제42 전차연대와 교전을 치른 끝에 24대의 T-34/85를 격파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실로 상당한 수준의 전과라 할 수 있는데 9월 25일까지 5일 동안 추가로 24대를 격파하고 5대를 노획함으로써 경인가도 일대에서만 총 48대의 T-34/85가 고철로 변해버렸다.

(사진:

이로써 제42 전차연대를 위시한 북한군 전차부대는 사실상 보유 차량 대부분을 손실해 전멸에 준하는 피해를 입었고 서울 방어전을 통해 그나마 보충된 예비 차량들까지 모조리 손실해버렸다.

반면 미 해병대의 M26 “퍼싱” 피해는 겨우 3대로 이 중 2대는 9월 19일, 미 제73 전차대대 A중대 소속 차량이 안양시 북방 2마일 지점에서 도로 장애물을 제거하던 중 북한군의 저항으로, 나머지 1대는 수원 전차전에서 격파된 것이다.

즉, 전차전으로 입은 피해는 겨우 1대 뿐이었으니 사실상 북한 전차부대는 M26 “퍼싱“ 1대만 격파하는 대가로 48대의 전차를 손실한 셈이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경인가도 일대에서 제42 전차연대를 위시한 북한 전차부대가 궤멸당한 것은 전선에 크나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공세의 주축인 전차가 일소되었으니 그 동안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내기에 급급했던 UN군과 한국군이 반격을 감행할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

 

북한전차 부대의 퇴각 및 패주

9월 18일, 그 동안 방어전으로 일관했던 한국군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가 마침내 반격에 나서자 23일을 기해 낙동강까지 밀려내려 왔던 북한군은 총 퇴각,  패주를 시작했다.

이 와중에 북한군 전차대는 다부동 전투 이래 최대 규모의 전차 기습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9월 21일 야간, 안양과 수원 비행장 탈환을 위해 진격하던 제73 전차대대는 수원 시내에서 T-34/85 5대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순식간에 M26 “퍼싱” 1대가 그 자리에서 격파되었지만 후속 전차들이 신속하게 대응해 T-34/85 1대가 불길에 휩싸였다.

한편 수원 시가지 남쪽에서는 미 제7 보병사단 작전참모 햄프턴 중령이 야간 기습을 감행하던 T-34/85 4대를 아군 전차로 오인하며 다가섰다가 DT 동축 기관총 세례를 받고 전사했다.

햄프턴 중령을 사살한 T-34/85들은 그대로 질주해 제73 전차대대 숙영지를 급습했지만 사전에 대기하고 있던 M26 “퍼싱” 전차 소대 5대의 공격을 받아 40m 전방에서 2대가 격파돼 놀란 잔여 차량들은 황급히 도주했다.

이 기습 공격은 적외선 감시 장비가 보편화된 최근에도 야음에서의 피아식별이 얼마나 중요한 지 일깨워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9월 22일 새벽, 제73 전차대대와 미 제7 보병사단 32 보병연대 1대대는 수원 비행장을 탈환한 후 전사한 햄프턴 중령의 시신을 안장했다.

[디펜스 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