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비무장지대 강철부대 임진스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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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비무장지대 강철부대 임진스카웃
  • 이승준 기자
  • 승인 2022.02.14 2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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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특수군과 맞섰던 주한미군 임진스카웃 60년 만에 최초 공개

문관현 지음

426쪽∥도서출판 정음서원∥출간일 2022. 1. 21.∥분야: 국내도서> 정치사회> 국방/군사/통일∥값 25,000원∥ISBN 979-11-972499-4-5

 

책소개

제2의 한국전쟁 발생…저강도 분쟁

미 국방부 인정한 13개 지상전에 포함

CIB 공식착용·전투수당 지급

서부전선 매일 무력충돌…10일에 7명꼴 사망

북한군 1960년대 비정규 게릴라전에 올인

주한미군 임진스카웃 60년 만에 최초 공개

미국 합동참모본부 공식문건 등에서 1966년 10월 5일부터 1969년 12월 3일까지 ‘제2의 한국전쟁’, ‘비무장지대전쟁’, ‘조용한 전쟁’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미 국방부는 지상전(ground battle)에 참가한 군인들만 착용할 수 있는 전투보병휘장(CIB) 사례 13건 가운데 비무장지대전쟁을 포함시키고 있다. 1968년부터 1973년까지 주한미군 전투부대원들에게 65달러의 전투수당이 지급됐다.

유엔사 보고서를 살펴보면 1966년 50건에 불과한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사례가 1967년 566건, 1968년 761건, 1969년 99건을 기록하였다. 해당 기간 한국군이 299명, 주한미군 75명, 북한군 397명이 전사해 10일에 7명꼴로 희생됐다.

북한은 당시 비정규 게릴자전을 수행하기 위해 제283군부대와 제124군부대, 특수8군단 등을 창설해 대남도발을 감행했으나 주한미군과 한국군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찰스 본스틸 유엔군 사령관의 지휘 아래 1968년 중반까지 비무장지대 철책선이 완성됐고, DMZ 순찰-GP 운영-통합장벽시스템-기동타격대 가동 등 4단계 방어망을 가동해 철통 방어망을 구축했다.

1965년부터 26년 동안 북한군 특수부대와 ‘창과 방패’ 대결을 벌였던 주한미군 임진스카웃은 냉전체제 해체와 한국군 위상 강화 등으로 인해 서부전선 방어 임무를 한국군에 넘겨주고 해체됐다.

주한미군이 한국형 강철부대 ‘임진스카웃(imjin scouts)’을 도입해 북한의 대응을 막아내고 전면전으로 비화될 불씨를 효과적으로 잠재웠다는 사실이 60년 만에 최초로 공개됐다.

 

저자소개

전남 진도에서 초등학교 교사의 막내아들로 태어났고, 빛고을 광주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대학시절 문학청년의 꿈을 접고 카투사로 입대해 동두천 미군부대에서 복무하였다. 유엔군사령부 민정경찰(DMZ POLICE) 요원으로 선발돼 비무장지대에서 임진스카웃 임무를 수행하였다.

군복을 벗고 민간인이 되자 카투사 예비역들을 소집해 사단법인 대한민국카투사전우회(KVA: KATUSA Veterans Association)를 설립하고 초대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KVA는 카투사의 위상정립과 명예회복, 공공외교 강화 등을 목표로 활동 중이며 가입회원이 1만여 명에 달한다.

예를 들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무연고 카투사들의 유해를 가족 품에 돌려주었고, 북한 장진호 전투에서 희생된 카투사들이 60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국내 공중파방송 최초로 카투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였고, 충남 태안 기름유출 사고현장에서 봉사활동을 벌였다. 전투병 출신 예비역들이 현역 카투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40km 무장행군, ‘만추마일(Manchu Mile)’에 3차례 동참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카투사 참전활동을 주제로 국방대 석사학위를 받았고, 유엔군사령부 위상과 역할 변화를 주제로 고려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일본 조치대학(上智大學)과 미국 하버드대에서 한일관계와 한미동맹 등 국제 문제를 연구하고 탄탄한 인맥을 구축하였다.

연합뉴스 편집국 민족뉴스부와 남북관계부, 북한부, 통일외교부 등에 근무하면서 주로 국방부·외교부·통일부 외교안보 분야를 취재하였고, 보도채널 연합뉴스TV에서 인기 프로그램 ‘문관현의 통일열차’를 진행하였다.

전남 진도 출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학사 국방대 안보정책학 석사 고려대 북한학 박사 일본 조치대학 객원연구원  미국 하버드대학 펠로 미2사단 72전차2대대 수색소대 복무 카투사 명예의 전당 헌액 대한민국카투사전우회 초대 사무총장 한국기자협회 부회장 국방부 출입기자

 

출판사 서평

1960년대 후반 북한군 특수부대가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 서부전선을 휘젓고 다닐 때 우리군의 대응태세는 어떠했을까.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청와대 입구까지 침투했지만 이렇다 할 대응방안을 내놓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임진스카웃』을 펼쳐보세요!

임진스카웃 명칭은 임진강 이북에서 군사분계선 이남까지 비무장지대 서부전선에서 수색임무를 완수한 전투병들에게 임진스카웃(Imjin Scouts) 인증서가 발급한데서 유래됐다.

미2사단이 1965년 9월 경기도 파주군 진동면 동파리 소재 캠프 싯먼(Camp Sitman)에 고급전투훈련교육대(ACTA)를 설립하면서 임진스카웃이 탄생했다. 247년 미 육군 역사상 본토가 아닌 해외 분쟁현장에 설립한 전투학교는 ACTA가 최초였다.

ACTA는 미2사단 전투부대원 가운데 150여 명을 선발해 22일 동안 총 262시간의 전투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산악훈련과 독도법, 무기조작, 폭파, 통신 심지어 DMZ 수색교육까지 실시했고 비무장지대 방어작전에 투입됐다.

임진스카웃은 매년 1,800명 규모로 활동했기 때문에 1991년 10월까지 총 4만6천여 명을 배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스카웃은 1960년대 중반 이후 달라진 북한의 침투패턴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에 북한군 무력도발을 저지할 수 있었다.

비무장지대 서부전선 방어 임무를 맡았던 미제2보병사단 예하의 대간첩중대 한국군으로임무가 넘어가기전까지 임진스카웃과 함께 대간첩 작전을 수행했다.

임진스카웃이 비무장지대를 지켰지만 북한군 특수부대는 후방 지역까지 침투해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는가 하면 무고한 양민 학살을 자행했다. 임무상 한계를 지녔다고 보지 않는가?

1966년 9월 1일 본스틸 유엔군사령관이 부임하였을 때 남한땅 통틀어 휴이 헬리콥터가 4-5대에 불과했다.

그런데 경기도 파주 일대에 무장공비가 나타나면 헬리콥터를 타고 즉각 출동하는 주한미군 기동타격대가 출범했다.

바로 300명 전원이 한국군 카투사들로 구성된 미2사단 대간첩중대, Counter Agent Company 였다. 이번 임진스카웃 저술 과정에서 최초로 그 실체가 드러났다.

전체 5개 소대 가운데 제3소대는 임진각 일대 마정리 운천리 등 이장집에 2-3명씩 하숙생으로 투입됐다. 매일 아침 동틀 무렵 장발의 사복 청년들이 마을 주변을 배회했다. 강변에 수상한 발자국이 남아있거나 풀잎이 일정한 방향으로 쓰러져 있으면 파주 봉서산 전용기지국을 통해 사단 상황실로 무전보고를 올렸다.

휴이 헬리콥터 기동훈련 (사진제공 :윤창식)
휴이 헬리콥터 기동훈련 (사진제공 :윤창식)

상황보고 후 몇 분이 지나면 굉음과 함께 M60 무장한 헬리콥터가 나타나고 나머지 4개 소대로 구성된 기동타격대원들이 출동했다.

미2사단에 공중강습부대 503.506 보병연대가 1986년 무렵부터 배치됐으니 20년이나 앞서 한반도에서 헬리콥터를 이용한 공중강습작전이 전개됐던 셈이다.

지역방어를 담당한 임진스카웃과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활약한 대간첩중대가 상호 보완적으로 기능해 북한군 침투를 막아냈다.

임진스카웃과 대간첩중대 활약으로 1968년 6월부터 11월까지 미2사단 지역에 북한군 27명이 침투했으나 25명을 격퇴하거나 사살했다.

임진강 반구정 주변에서 사복정찰 중인 CAC 요원. (사진제공 :윤창식)
임진강 반구정 주변에서 사복정찰 중인 CAC 요원. (사진제공 :윤창식)

대간첩중대는 존재 자체부터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부대 창설 배경과 이들이 거둔 대표적인 전과를 소개해줄 수 있나?

박정희 대통령 ‘오른팔’로 통하던 윤필용 방첩부대장이 전방부대마다 기동타격대를 창설해 사실상 대간첩작전을 주도했다. 하지만 미2사단 관할구역인 경기 파주군은 김신조부대 침투사례에서 보듯이 북한군이 주요통로로 사용했다.

미2사단과 협의 끝에 기동타격대로 카투사 중대를 창설했고, 윤필용 부대장이 별도 라인을 통해 보고를 받거나 지시를 내렸다. 육사 출신 엘리트 장교들이 소대장을 담당했고 어학 특기자와 체력우수자 위주로 부대원들을 구성했다. 초기엔 부대 존재를 외부에 일절 공개하지 않았고,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비밀병기로 양성했다.

1968년 9월 19일 북한군 침투조 5명 전원을 섬멸한 임진강 갈대밭 9·19대첩은 당시 한국 언론에 소개되었고 미군 자료에도 남았을 정도로 손꼽히는 전과였다. 포위작전을 벌여 북한군 4명을 사살했고 도주하던 1명은 지뢰를 밟아 폭사했다. 카투사 박만득·김상훈 병장이 전사했고 7명이 부상하는 등 아군의 희생도 작지 않았다.

 

목차

제1장 비극의 재탄생

1. 제2의 한국전쟁

2. 본스틸-러스크 한반도 라인업

3. 비무장지대 철통 방어망 구축

4. 한국형 특공대 임진스카웃 도입

제2장 제2의 한국전쟁 시대적 배경

1. 중공군 철수와 베트남 파병

2. 4대 군사노선 채택과 군사적 모험주의

3. ‘인간병기공장’ 특수8군단 탄생

4. 특수부대별 도발 양상

제3장 북한군 특수부대의 침투사례

1. 제2의 한국전쟁 첫 희생양

2. 1·21 청와대 기습 미수 사건

3.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4. “원산항에서 대동강까지”-푸에블로호 미스터리

5. EC-121 격추사건-미그기 분해·조립·격추 작전

6. 가장 짧은 전쟁-판문점 총격사건

제4장 카투사의 어제와 오늘

1. 전장에 핀 꽃-카투사 제도

2. 카투사 프로그램 제도화(1953-1970)

3. 미2사단 전투병 카투사-군사외교관 역할

4. 김치카투사·보리카투사

제5장 임진스카웃 도입과 운영 실태

1. 임진스카웃 이전의 수색정찰(1953-1965)

2. 미2사단 임진스카웃 시대(1965-1991)

3. 임진스카웃 주요부대

4. 비무장지대 수색일지

제6장 대간첩중대(Counter Agent Company)

1. 미군부대 한국군 별동대 탄생

2. ‘올라운드’ 플레이어 대간첩중대

3. 임진강 갈대밭의 전설-9·19대첩 압승

제7장 눈물 젖은 임진강

1. 쪼개진 장단군·흩어진 강릉김씨

2. 고엽제 피해보상 사각지대

3. 버림받은 영혼들의 안식처-파주 적군묘지

제8장 맺음말

■ 임진스카웃과 CAC 재평가를 위한 제언

<부록>

1.본스틸 장군 회고록

2. 북한의 도발연표(1966-1969)

● 참고문헌

● 인터뷰 대상자 명단

 

[디펜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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