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6·25 전사자 발굴 유해 1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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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6·25 전사자 발굴 유해 12위
  • 이승준 기자
  • 승인 2022.06.30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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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 년 전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다가 장렬하게 산화한 12인의 호국영웅이 영면에 들어갔다.

육군은 6월 29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각각 8위와 4위의 6·25전쟁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안장식을 엄수했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6·25전쟁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안장식에서 장병들이 영정과 영현을 봉송하고 있다. (사진:육군)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6·25전쟁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안장식에서 장병들이 영정과 영현을 봉송하고 있다. (사진:육군)

8위의 유해가 안장된 국립서울현충원 합동안장식은 박정환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전사자 유가족, 국방부와 국가보훈처 관계자, 군 장병 등이 참석했고, 같은 시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된 4위의 합동안장식은 여운태 육군참모차장 주관으로 유가족, 육군본부 부·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호국영웅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12위의 호국영웅 중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영면에 들어간 유해는 故 박동지 이등상사(현계급중사), 故 김일수·노재균·이우서·홍인섭 하사(현계급상병), 故 안승원·김종술 일병, 김학수 일병 등 8위다. 故 김재규 이등중사(현계급병장), 故 박기성·조응성 하사(현계급상병), 故 김진욱 일병 등 4위의 유해는 유가족 요청에 따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6·25전쟁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안장식에서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육군)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6·25전쟁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안장식에서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육군)

故 박동지 이등상사와 안승원 일병은 6·25전쟁 당시 1사단 12연대 소속으로 참전하여 수원 북방전투 중 전사했다. 고인의 유해는 경기도 성남 동원동에서 발굴됐다.

박 이등상사는 1928년 전북 정읍에서 4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8년 결혼 1년 만에 생계를 위해 입대했다가 1950년 7월 23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후일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고인의 아내는 평생 남편이 군복 입고 찍은 사진을 방에 걸어두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 지난 2019년 생을 마감했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6·25전쟁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안장식에서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이 조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육군)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6·25전쟁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안장식에서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이 조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육군)

안 일병은 1926년 전북 정읍에서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49년 입대하여 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박 이등상사와 같은 고향, 같은 부대 소속으로 같은 전투에서 전사했다.

故 김일수·조응성 하사는 6·25전쟁 당시 9사단 30연대 소속으로 참전하여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했다. 고인의 유해는 강원도 철원의 비무장지대(DMZ) 백마고지에서 발굴됐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6·25전쟁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안장식에 참석한 유가족들이 분향하고 있다. (사진:육군)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6·25전쟁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안장식에 참석한 유가족들이 분향하고 있다. (사진:육군)

김 하사는 1932년 경북 칠곡에서 5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돕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20세에 입대했다. 고인은 1952년 10월 백마고지에서 진지를 사수하는 방어작전간 적 포탄에 의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 하사는 1928년 경북 의성에서 3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52년 아내와 5살·3살 배기 두 딸을 뒤로한 채 입대했다가 같은 해 25살의 나이로 전사했다. 후일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6·25전쟁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안장식에 참석한 유가족이 참전용사 사진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사진:육군)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6·25전쟁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안장식에 참석한 유가족이 참전용사 사진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사진:육군)

故 김재규 이등중사와 이우서 하사는 6·25전쟁 당시 7사단 8연대 소속으로, 故 박기성 하사는 8사단 10연대 소속으로 참전하여 백석산 전투에서 전사했다. 고인의 유해는 강원도 양구 백석산에서 발굴됐다.

김 이등중사는 1929년 전북 김제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입대 전 부친의 사업을 돕다가 1950년 7월 입대 및 참전하여 1951년 23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6·25전쟁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안장식에 참석한 유가족들이 묵념하고 있다. (사진:육군)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6·25전쟁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안장식에 참석한 유가족들이 묵념하고 있다. (사진:육군)

이 하사는 1924년 충남 서산에서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입대 전 농사를 짓다 15세 전후로 생계를 위해 객지로 떠난 후 가족들과 소식이 끊겼다. 1951년 5월 입대했다가 같은 해 9월 27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박 하사는 1929년 전남 보성에서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했으며, 1951년 23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후일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故 노재균 하사와 김진욱 일병은 6·25전쟁 당시 7사단 3연대 소속과 8사단 소속으로 각각 참전하여 춘천부근전투에서 전사했다. 고인의 유해는 강원도 춘천 북산면에서 발굴됐다.

노 하사는 1928년 경북 선산에서 4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가족들과 피란 중이던 1950년 9월 입대했다가 같은 해 12월 23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김 일병은 1930년 경북 상주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0년 11월 아내와 한 살배기 딸을 뒤로 한 채 입대했다가 같은 해 12월 21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故 김학수 일병은 6·25전쟁 당시 5사단 35연대 소속으로 참전하여 서화리 전투에서 전사했다. 고인의 유해는 강원도 인제 서화면에서 발굴됐다.

김 이병은 1925년 충북 진천에서 6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51년 3월 아내와 세 살배기 딸을 두고 참전했다가 같은 해 6월 27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故 김종술 일병은 6·25전쟁 당시 8사단 16연대 소속으로 참전하여 영천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고인의 유해는 경북 포항 죽장면에서 발굴됐다.

김 일병은 1926년 경북 김천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의 가업을 돕다가 1950년 9월 아내와 2명의 젖먹이 아들, 뱃속의 막내아들을 뒤로한 채 입대했다. 같은 해 10월 영천지구전투에서 북한군을 상대로 반격작전을 수행하던 중 24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故 홍인섭 하사는 6·25전쟁 당시 1사단 11연대 소속으로 참전하여 다부동 전투에서 전사했다. 고인의 유해는 경북 칠곡군 가산리에서 발굴됐다.

홍 하사는 1931년 경기 용인에서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9년 입대했다가 전쟁 초 다부동 전투의 격전지였던 유학산에서 22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고인의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며 매 끼니 밥을 따로 떠서 솥 안에 따뜻하게 보관하기를 30년 넘게 하다가 1999년에 작고했다.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은 조사에서 “선배님들께서 이루어오신 승리의 발자취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 번영에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며, “육군은 이 땅 어디에선가 기다리고 계실 또 다른 호국영웅님들을 끝까지 찾아서 단 한 분도 홀로 남겨두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모실 것”을 약속했다. 

[디펜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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