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공군기지 51전투비행단 창설 75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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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공군기지 51전투비행단 창설 75주년
  • 이승준 기자
  • 승인 2023.08.30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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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전투비행단(51 FW)은 2023년 8월, 창설 75주년.

51전투비행단은 1948년 8월 10일부터 18일까지 홉슨 계획에 따라 활성화된 태평양 공군(PACAF) 5개 부대 중 하나였다.

51 비행단은 1948년 8월 18일 오키나와의 나하 기지에서 류쿠 제도의 방공 임무를 맡기 위해 창설되어 활성화되었다.

75년의 역사 동안 51전투비행단은 최초 발족 이후 6번이나 재지정되어 태평양 지역 내 6개의 기지에 배치되었다.

51 FW는 제51추격(요격)그룹과 제51전투그룹의 제2차 세계대전(WWII) 전투 명예를 부여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영예 수여 전통은 1954년 11월 서한을 통해 각 전투비행단에 비슷한 명칭을 가진 이전 전투비행단의 역사와 영예를 부여하면서 시작되었다. 51전투비행단 깃발과 제51작전사령부 깃발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캠페인 깃발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비행단은 1950년 2월 1일 제51전투요격비행단(51 FIW)으로 재지정되었으며, 1971년 5월 31일에 해체될 때까지 오키나와 나하 비행단, 일본 이타즈케 비행단, 대한민국 김포 비행단, 일본 쓰이키 비행단, 대한민국 수원 비행단에 주둔했다.

1953년 6월경 대한민국 수원 공군기지에 제51전투요격비행단에 배속된 미 공군 F-86 세이버가 호안에 정렬해 있다. (사진:U.S.Air Force)
1953년 6월경 대한민국 수원 공군기지에 제51전투요격비행단에 배속된 미 공군 F-86 세이버가 호안에 정렬해 있다. (사진:U.S.Air Force)

1950년대 - 제51전투요격비행대대

6.25 전쟁 초기에 51전투요격비행대의 거의 모든 전투 임무는 일본에서 이륙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당시 51전투비행단이 운용하던 F-80C 슈팅스타가 무장과 연료를 가득 싣고 총중량 기준으로 최소 7,000피트 이상의 활주로를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1950년 6월 25일 이후 당시 한국에서 F-80을 운용할 수 있는 활주로는 부산 기지 활주로가 유일했다.

그러나 이 부산 기지 활주로는 대부분 전투가 벌어진 부산 방어선으로 병력과 보급품, 탄약을 실어 나르는 수송기들로 인해 포화상태가 되어 버렸다. 일본에서 출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당시 중공 제트 전투기의 사정거리에 있던 오키나와에 여러 대의 B-29 폭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51 FIW는 이를 호위하기 위해 나하 공군기지에 머물러야 했다.

6.25 전쟁 초기 18개월 동안 51 FIW는 F-80 전투기로 근접 항공 지원 및 무장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이 기간 동안 17,551회의 출격과 17,423,999발의 50구경 탄약, 26,460발의 로켓, 1,597톤의 네이팜탄, 2,946톤의 폭탄이 사용되었다.

조종사들은 피스톤 엔진 항공기 15대를 격추하고 11대를 손상시켰으며, 미그 15 8대를 파괴하고 15대가 손상시켰다. 이 부대는 13명의 조종사가 전사하고 4명이 부상당했으며, 30대의 F-80 전투기가 적의 공격으로, 40대는 기타 이유로 손실되었다. 

부대는 수많은 트럭, 차량, 교량, 건물, 포진지, 탱크, 철도 집결소, 선박, 보급품 저장소, 지휘통제 시설을 파괴했다.

1951년 12월 F-86으로 기종을 전환한 후, 이 부대는 307대의 미그기를 파괴하고 285대를 손상시켰다.

51전투비행단은 10번의 작전 중 9번의 작전에 참여했으며,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을 두 번이나 받았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51명의 FIW 조종사가 45,000회 이상 출격하여 308대의 MiG-15를 격추했으며, 미 공군 최고의 에이스였던 조셉 C. 맥코넬 주니어 대위를 포함하여 16번의 공중 승리를 거둔 14명의 에이스를 배출했다. 

한국전쟁의 공중전 승리와 패배 비율은 10 대 1이었다.

51전투비행단은 전투 임무 수행 중 52명의 조종사를 잃었다. 격추된 조종사 9명은 전쟁 포로가 되었지만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체결된 후 송환되었다. 한 명의 포로인 해롤드 E. 피셔 대위는 1953년 4월 7일 중국군에 붙잡혔다가 1955년 5월 31일 홍콩에서 마침내 석방되었다.

1954년 8월 1일, 51 FIW는 오키나와의 나하 공군기지로 돌아왔고 이후 17년 동안 류큐 제도에서 방공임무를 수행했다. 이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비행단은 지역 위기에 대응하여 세 차례에 걸쳐 기동 준비 태세를 입증했으며 몇 가지 주요 조직 변화를 경험했다.

1985년 대한민국 오산 공군기지 상공에서 미 공군 F-4 팬텀 II가 편대를 이루어 비행하고 있다.(사진:U.S.Air Force)
1985년 대한민국 오산 공군기지 상공에서 미 공군 F-4 팬텀 II가 편대를 이루어 비행하고 있다.(사진:U.S.Air Force)

1957년 예산 제약과 인력 감축으로 인해 51 FIW는 처음으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1957년 8월 15일, 제16전투요격비행대대와 제25전투요격비행대대, 제51야전정비비행대대 등 3개 부대만 배치된 순수 전술 조직으로 재편되었다.

나하 기지 지원 기능은 313 항공 사단이 제공했다.

이러한 상황은 1960년 7월 18일 제51공군기지단이 재가동되어 제51전투비행단에 배속되고 기지 지원 작전을 위임받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1957년 감축에도 불구하고 이 비행단은 태평양 전역에서 기동 임무를 수행하면서 류큐 제도의 영공 방어라는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1958년 8월 29일부터 1959년 1월 26일까지 51 FIW는 중국 본토 공산군이 국민당이 장악한 케모이와 마츠 섬을 포격한 후 8대의 F-86 세이버를 대만에 배치하여 중국 국민당군을 위한 전투 항공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6년 후, 비행단은 1964년 8월 5일부터 12월 4일까지 12대의 F-102 델타 대거를 필리핀과 남베트남에 배치하여 북베트남의 공습에 대한 영공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1968년 1월 23일 북한군이 푸에블로 호를 나포하면서 비행단은 다시 국제적, 지역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연루되었다.

1968년 1월 30일부터 2월 20일까지 51 FIW는 12대의 F-102를 대한민국 수원 기지에 배치했다. 위기가 완화되자 전투기들은 나하 공군기지로 재배치되었다가 1968년 6월 수원으로 돌아와 1971년 3월까지 영공 방어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사진은 1966년경 일본 오키나와 나하비행장에 주둔한 51전투요격비행단에 배치된 F-102 델타대거다. 제51전투요격비행단의 일원인 제16전투요격비행대대는 1959년 12월 7일 처음으로 F-102를 오산비행장에 배치했다. 이 전투기는 1964년 제16전투요격비행대대가 베트남에 파병될 때 비행단 전력의 일부가 되었다.(사진:U.S.Air Force)
사진은 1966년경 일본 오키나와 나하 기지에 주둔한 51전투요격비행단에 배치된 F-102 델타대거다. 제51전투요격비행단의 일원인 제16전투요격비행대대는 1959년 12월 7일 처음으로 F-102를 오산비행장에 배치했다. 이 전투기는 1964년 제16전투요격비행대대가 베트남에 파병될 때 비행단 전력의 일부가 되었다.(사진:U.S.Air Force)

1971년, 미 공군은 51 FIW를 포함한 일본 내 대대적인 병력 감축과 부대 재배치를 발표했다.

1971년 5월 31일, 51 FIW의 비활성화로 기지가 일본 자위대로 이관됨에 따라 나하 기지의 태평양에서의 총 19년간의 임무가 종료되었다.

1970년대 - 제51공중기지비행단 및 제51복합비행단

1971년 베트남 철수와 주일미군의 재편으로 태평양 전역에 걸쳐 조직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태평양 공군 본부는 히캄 공군기지, 오산 공군기지, 요코타 공군기지에 있는 세 개에 새로운 부대 명칭을 부여했다.

그 결과 1971년 11월 1일, 재지정된 제51공군기지비행단(51 ABW)이 6314지원비행단을 대체하여 대한민국 오산비행단에서 주둔하게 되었다.

이 비행단은 처음으로 전투 임무가 없는 지원 조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오산비행장 운영 외에도 쿤니 공대지 사격장과 한반도 전역의 최대 10개 격오지를 책임지고 있었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비행단의 전술기들은 C-47 스카이트레인, C-123 프로바이더, T-33 슈팅스타, VT-29, CH-3 헬기로 구성되었다.

제51전투요격비행단 소속 미 공군 F-80C 슈팅스타가 1951년 10월경 JATO병의 지원을 받으며 대한민국 수원 공군기지에서 이륙하고 있다. 1950년 12월 15일, 미 육군 방어를 지원하기 위해 제51전투요격비행단은 북한에서 철수하는 제2보병사단을 위한 일주일간의 근접 항공 지원 임무의 시작을 알리는 F-80C 슈팅스타를 출격시켰다. 51전투비행단은 단 3일 동안 750회 이상의 출격을 수행했다.(사진:U.S.Air Force)
제51전투요격비행단 소속 미 공군 F-80C 슈팅스타가 1951년 10월경 JATO를 사용하여 수원 공군기지에서 이륙하고 있다. 1950년 12월 15일, 미 육군 방어를 지원하기 위해 제51전투요격비행단은 북한에서 철수하는 제2보병사단을 위한 일주일간의 근접 항공 지원 임무를 위해 F-80C 슈팅스타를 출격시켰다. 51전투비행단은 단 3일 동안 750회 이상의 출격을 수행했다.(사진:U.S.Air Force)

비전투 비행단으로서의 지위는 3년도 채 지속되지 않았다.

1974년 9월 30일, 태평양공군 사령부는 두 가지 비행 임무를 추가하면서 51 ABW를 제51복합비행단(51 CW)으로 재지정했다:

제36전투비행대대와 제19전술항공지원비행대대(19 TASS) 예하에서 F-4 팬텀 II와 OV-10 브롱코를 운용했다.

1976년, 이 비행단은 전술통제비행대대, 직접항공 지원비행대대, 전술항공통제센터비행대대와 함께 추가 임무를 맡아 한국 전술 항공 통제 시스템(KTACS)을 구성했다.

1980년, KTACS의 통제권은 1982년 6월까지 제5전술통제단으로 이관되었고, 제5전술통제단은 1982년 6월까지 이 비행단에 배치되었다.

당시 이 그룹은 오산 공군기지에 있는 314 비행단으로 재배치되었는데, 이는 51 CW가 다시 한 번 전술 전투기 임무로 복귀할 예정이었던 초기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1980년대 - 제51전술전투비행단

51전투비행단은 1981년 1월 1일 수원 기지에 A-10 썬더볼트 II 대대를 배치했다.

제25전술전투비행대대(25 TFS)는 1982년 1월 28일 비행대대 최초의 A-10이 대한민국에 착륙할 때까지 전술기가 없는 상태를 유지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1982년 7월 1일에 제51전술전투비행단(51 TFW)로 네 번째로 재지정되었습니다.

1988년 8월, 제36전술전투비행대대는 F-4에서 F-16 파이팅 팰콘으로 기종을 전환했다.

동시에 25 전술 전투비행대대가 1990년에 F-16으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1989년 8월 소련이 붕괴된 후 이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25 TFS는 비활성화되고 A/OA-10을 운용하는 19 TASS로 대체되었다.

냉전 이후 미 공군은 43년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51 TFW는 활성화, 비활성화, 재지정 등 많은 조직 변화를 경험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1990년 10월 1일, 1957년 이후 처음으로 그룹 구조의 조직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 조직은 7개 그룹, 18개 편대, 3개 분견대, 6개 작전 지역을 배정했다.

1990년 10월 조직 개편으로 A-10 임무와 KTACS 임무가 비행단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이 조직은 16개월 동안만 지속되었다.

1990년대 - 제51비행단

1992년 2월 7일,제51비행단이 제51전투비행단(51 WG)으로 다섯 번째로 재지정되었다. 1992년 8월에는 제55공수비행단과 두 대의 터보프롭 C-12 휴런 수송기를 배치하여 공수 지원 역할을 추가했다.

1993년부터 오늘날까지 - 제51전투비행단

1993년 1월 1일, 제38항공탐색구조대대가 이 비행단에 임시로 배치되었다.

1993년 10월 1일, 비행단으로 다시 한 번 재지정되어 1948년의 원래 명칭인 51 FW로 돌아갔다. 동시에 25 TFS는 제 25 전투기 대대로 재 활성화되어 19 TASS를 대체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내내 비행단은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후속 전력을 수용 및 지원하는 다중 역할 임무를 수행했다.

2002년 9월, 비행단은 공군 차원의 원정군 역량 강화 계획의 일환으로 조직에 또 다른 변화를 겪었다.

관리형 조직에서 작전, 정비, 임무 지원 등 필수 핵심 역량에 초점을 맞춘 조직으로 재편했다.

2010년 2월부터 2011년 3월까지 51 비행단은 A-10A에서 A-10C로 전환하여 모든 현역, 예비역, 항공 방위군 부대 중 업그레이드된 근접지원기를 도입한 마지막 미 공군 조직이 되었다.

51 비행단은 2011년부터 F-16 및 A-10 항공기를 운용하고, 전투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준비된 공군력을 제공하고, 기지를 방어하고, 비상 작전을 수행하고, 병력을 유지하며, 준비태세, 팀워크를 우선시하는 미 공군에서 가장 준비되고 응집력 있는 팀이 되기 위해 인력을 장비 및 훈련하는 임무를 계속 수행해 왔다.

51전투비행단은 근접항공지원, 항공통제, 전방항공통제-공중, 전투탐색구조, 대공 및 화력, 차단을 위한 전투준비전력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한편, 오산공군기지의 3대 주요 비행단 및 대형 복합 전투부대를 포함한 후속 전력을 유지 및 운용하는 군사작전을 수행한다.

[디펜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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