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과학연구소 최초 설계, 한국형 고속정 학생-제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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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과학연구소 최초 설계, 한국형 고속정 학생-제비급
  • 장훈 기자
  • 승인 2020.02.11 2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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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최초 건조,해군의 대간첩작전의 주력

학생(구 제비)급 고속정

  학생급은 최초의 국산 고속정 (PK) 건조사업으로 1970년 10월에 설계를 시작하고 1971년 6월 대한조선공사와 계약으로 2척을 건조한다.

학생급의 개발은 1964년부터 1969년까지 미국으로부터 군사 원조로 받은 고속정의 속도 한계가 있어 최대 40 ~ 50 노트의 속도를 내는 북한의 무장 간첩선 추격전 대응용으로 40 노트 속도를 내는 고속정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제비급이 등장하기까지 1967년부터 1969년까지 무장 간첩선을 추격 할 수 있던 고속정은 올빼미-1, 2호정이 단 2척뿐이었으며 올빼미-1호정은 CODAG 방식이지만 최대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가스터빈을 가동해야 했고 올빼미-2호(구 갈매기)정은 가솔린 엔진으로 연료 소모량이 문제였다.

최초의 학생급 건조식(사진 해군)
최초의 학생급 건조식(사진 해군)

학생들의 방위성금으로 모아 건조된 선도함 1972년 학생1호 (PBK-1)정이 , 이후 2번함 학생2호 (PBK-2)정이 건조되어 진수 후 의장공사 및 시운전 평가를 마치고 1972년 해군에 인도되었다.

두 척의 시제형 고속정 학생1호와 학생2호정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건조 된 29척의 고속정은 대한조선공사(현 한진 중공업)와 코리아 타코마 조선공업에서 병행수주로 1975년~1978년까지 해군에 인도되어 각 해역사령부에 배속되었다.

최초의 대량 건조 고속정 학생급(사진 해군)
최초의 대량 건조 고속정 학생급(사진 해군)

주추진기관은 고출력 디젤엔진을 탑재하는 CODAD로 채택했으며, 올빼미-1, 2호정의 연료 소모량에 비해 적다는 것이 장점이다.

1970년부터 MTU에서 생산이 시작된 16V 538 TB90 디젤엔진 2기를 탑재했으며 총 5,200 마력으로 해군의 요구대로 40 노트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작전중인 학생급 고속정(사진 해군)
작전중인 학생급 고속정(사진 해군)

무장체계는 각 함정들 마다 다르며, 1975년까지 취역한 다수의 고속정 선수에는 20mm 수동식 발칸(개틀링)과 고정식 5인치 로켓 발사대를 탑재했다.

그러나 20mm 수동식 발칸의 화력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1976년부터 40mm 수동식 기관포로 교체되면서 고정식 5인치 로켓 발사대도 제거되었다.

보조무장 20mm 기관포는 기존 방식과 같은 사수와 장전수로 이뤄진 쌍열포를 탑재한 방면 일부 함정은 방호형 포탑에 사수만 탑승하고 구동장치와 탄약저장장치, 장비의 부식 및 손상 방지 체계를 갖춘 반자동 형식의 쌍열포를 탑재했다.

  학생급은 소형 이지만 미국으로부터 공여 받은 고속정보다 빠른 속도로 한반도 연안으로 침투하는 북한 간첩선에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다.

1978년 4월 28일 항공기 지원으로 학생-173, 175정이 고흥반도에서 무장간첩선 격침, 7월 21일 학생-156, 157호정이 미조도 근해에서 간첩선 격침, 1980년 3월 25일 학생-159정은 다른 편대 소속이었던 기러기-218호정과 함께 격파 사격으로 간첩선을 격침시키는 전공을 세웠다.

  하지만 학생급은 <황천 5급>만 되어도 사실상 거의 작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또한 승조원 생활공간 협소, 항해 장비 등 제한으로 단독작전보다 편대를 이루어져야 임무 수행이 가능했다.

참수리(구 기러기)급 중형 고속정이 지속적으로 취역하면서 부산 3함대나 당시 진해 해군작전사령부에 배속되었다.

  2척의 시제형인 학생-151, 152(구 학생1, 2)호정과 개선형 일부와 함께 1980년대 말부터 1993년까지 참수리급과 대체되어 전량 퇴역 했다. 이후 고철로 매각 및 12척은 필리핀 해군에 척당 100달러에 무상으로 공여되었다.

정박중인 학생급(사진 해군).
정박중인 학생급(사진 해군).

독수리-11급 고속정

  독수리-11급은 독수리(B)로 불리며 1960년 미국의 군사 원조로 도입된 9척의 30톤급 독수리-1급 고속 경비정을 기본 토대로 해군본부 조함과 주관하에 진행되었다,
1972년 12월 기본설계가 완료되었으며, 선체는 알루미늄(Aluminum)으로 재질을 적용했고 미국에서 도입한 FB형(해군명칭: 독수리(A))에 비해 선체 크기와 배수량이 증가되었다.

독수리-11급(사진 해군)
독수리-11급(사진 해군)

1973년 4월 대한조선공사(현 한진 중공업)에서 선도함 독수리-11호정이 건조가 완료되었고 시운전 속도와 선체 복원성 평가에서 만족스럽지 못해 성능 평가서에 합격 승인되기 전 1974년까지 총 11척이 건조되어 해군에 인도되었다.

  또한 자체 건조로 이루어진 독수리급은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것과 마찬가지로 해상상태가 양호한 경우에서만 연안 경비임무 수행 및 단독작전보다 편대를 이루어져야 임무 수행이 가능했다.

  1976년 4월 13일 퇴역 및 해군 함대 목록에서 제적되었고 한 동안 항만경비정으로 전환되었다가 임무가 해제되면서 1980년대에 전량 퇴역 및 해군에서 제적되었으며 이후 고철로 매각되었다.

 

[디펜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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