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거 2 전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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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거 2 전차 (1)
  • 이치헌 기자
  • 승인 2019.12.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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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최강의 전차 티거 II 전차

진정한 수준의 최강이라 할 수 있는 독일군의 티거 B형, 이른바 티거Ⅱ-“쾨니히스 티거”

  기계적인 신뢰성에서는 나름대로 문제를 일으켰지만 등장한 순간 적들을 기겁하게 만든 제2차 세계대전 최강의 전차 “티거Ⅱ”

(사진: 디펜스 투데이)
티거-II 전차 (사진: 영국 육군)

 

티거Ⅱ의 태동 

   독일이 개발한 중전차( Schwere Panzer, Heavy Tank )는 견고하게 요새화된 적 진지에 대한 돌파전차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고 처음부터 적의 전차를 상대하는 임무는 주력전차인 “Ⅲ호 전차”가 담당할 일이었다.

  다만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Ⅲ호 전차가 “깨갱”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바로 1940년 프랑스 침공 당시 샤르 B1, B1 bis와 같은 괴물과 조우하면서부터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프랑스군 전차병 (사진: 프랑스 국방부)

중장갑을 두른 중전차( 重戰車 ) 앞에 Ⅲ호 전차는 너무나도 초라해졌고 부랴부랴 투입된 지원전차인 “Ⅳ호 전차” 역시 내 코가 석자!

(사진: 디펜스 투데이)
독일군 전차들 (사진: 독일 연방정부)

결국 막바지에 이르러 <공군의 88mm FLAK 36 중대공포>를 투입하는 난장판을 벌인 끝에야 간신히 B1을 격파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미육군)

현 시점까지 유지되어온 본 편제에 적잖은 문제점이 제기되었지만 당장 대량 생산이 진행 중이던 Ⅲ호 전차의 생산을 전면 중단할 수 없는 일이었고 1940년 당시에는 나름 균형 잡힌 성능이었기 때문에 일단 개량에 착수, 주포를 50mm kwk 38 L/42로 교체하여 공격력을 향상시켜 주력전차로 운용했다.

  이와 동시에 신형 돌파전차( 훗날 “티거”로 제식 채용된 )의 개발 진행도 순조롭게 이뤄져 1941년 5월 26일, 아돌프 히틀러 총통과 방산업체 실무자들이 참여한 회의에서 돌파전차의 안건이 구체적으로 확정됐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하니 바로 이 자리에서 히틀러 총통이 되도록 단시일 내에 기존의 독일 육군에 편제된 기갑사단들을 약 20개의 중기갑사단( Schwere Panzer Division, 重機鉀師團 )으로 강화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는 점이다.

  이에 실무자들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히틀러 총통의 희망사항대로 하자면 기존의 돌파전차로는 어림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차를 중기갑사단에서 운용하자면 우선 최고 속도가 Ⅲ호 전차에 준하는 시속 40km 이상은 발휘되어야 하고 주포 역시 위력이 강력해야 했으니 이를 탑재하기 위한 포탑과 차체의 대형화가 불가피했다.

  아직 돌파전차조차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중기갑사단을 위한 중전차의 개발 요구가 나온 셈이니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안 그래도 최악이었던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히틀러 총통의 언급에 따라 이 안건이 어느 정도 현실화되어간다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이 날 회의는 현 시점까지 축적된 연구 노하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루빨리 신형 돌파전차의 개발을 완료함과 동시에 중기갑사단을 위한 신형 중전차의 설계를 병행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렇지만 이 야심찬 계획은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등장한 적의 신형전차 T-34/76으로 인해 완벽하게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제2차 세계대전의 독일군 전차 (사진: 독일 연방정부)

당장 독일은 T-34/76에 대응하기 위해 차기 주력전차 계획을 대폭 수정했고 이는 훗날 Ⅴ호 전차 “판터”로 구체화되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개발 중이던 차기 돌파전차도 서둘러 개발을 마치고 대량 생산에 돌입해야 함이 분명해졌다.

 

독일병기국의 차기전차

  덕분에 개발은 급물살을 타 마침내 오랜 산고를 거쳐 시제 차량이 모습을 드러낸 차기 돌파전차는 그 당시까지 독일이 보유한 그 어떤 전차보다도 두꺼운 전면장갑과 강력한 88mm kwk 36 L/56 전차포를 탑재하고 있어 잘만하면 소련이 자랑하는 T-34/76과 KV-Ⅰ에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를 넘긴 1942년 전반기에만 해도 독일 육군 병기국은 차기 중기갑사단을 위한 중전차보다는 현재 개발이 진행 중인 차기 주력전차와 돌파전차의 완성에만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 두 차량은 각각 Ⅴ호 전차 “판터”( Panzerkampfwagen Ⅴ "Panther" sd.kfz 171 )와 Ⅵ호 전차 “티거”( Panzerkampfwagen Ⅵ "Tiger" sd,kfz 181 )로 제식 채용되어 전선에 투입되었다.

  판터는 최초 실전 데뷔인 쿠르스크 전투에서 참패를 당했지만 이후 A형으로 개량되면서 동부전선의 광활한 대지를 이용, 몰려오는 소련전차들을 격파하며 맹활약을 펼쳤다.

(사진: 디펜스투데이)
(사진: 러시아 국방부)

티거 역시 중장갑의 맷집을 앞세워 강력한 88mm kwk 36 L/56 전차포로 원거리에서 소련군의 주력전차인 T-34/76은 물론 교묘하게 매복한 Zis-3 76.2mm 사단포 진지를 격파하는 첨병이 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문제는 이렇게 두 맹수의 배치와 생산에만 전념한 나머지 티거의 후속 중전차에 대한 계획 및 요구사항은 자연스레 묻혀갔다는 점이지만.

  그러나 1943년 1월, 육군 병기국에 의해 자칫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하게 사라지려 했던 차기 중전차 계획이 다시 제기되었다.

  육군 병기국은 공식적으로 티거의 후속 중전차에 대한 개발 지시를 하달했는데 이는 단순한 티거의 개량형이 아닌 전혀 새로운 차량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육군 병기국은 차기 중전차의 개발 요구사항에서 주포와 장갑에 주안점을 두었는데 우선 주포를 살펴보면 위력 강화에 적잖이 신경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육군병기국의 주포와 장갑강화

  원인은 티거에 장착된 88mm kwk 36 L/56!

  이 포는 대공포를 개량한 것이었으므로 판터의 75mm kwk 42 L/70처럼 처음부터 전차포로 설계된 제대로 된 “물건”을 물색할 만도 했다.
  더욱이 독일군은 88mm kwk 36 L/56에게 호되게 당한 소련군이 곧 이 포로 격파할 수 없는 보다 강력한 전차를 개발, 투입할 것에 대비해야 했다.

  두 번째는 장갑의 강화!

  이는 소련군이 티거와 판터에 대응하기 위해 마치 독일의 돌격포와 유사한 차량을 투입하면서 필연적으로 요구된 사항이다.
  즉, 소련군이 기존의 Su-85나 Su-100으로 모자라 아예 곡사포와 같은 대구경 주포를 탑재하기로 결정, M1938 122mm 곡사포를 탑재한 Su-122나 ML-20S 152mm 곡사포를 탑재한 Su-152를 생산해 투입하자 독일군 전차병들로서는 적잖은 위협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실제 Su-122나 Su-152의 공격으로 판터와 티거의 피해가 발생하자 차기 중전차의 장갑 강화는 필수조건이 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무턱대고 장갑 두께만 강화한다고 능사가 아닌 판국이라 어쩔 수 없이 판터와 마찬가지로 경사장갑을 두르기로 결정했다.
  또한 독일 국내가 완전 전시체제로 돌입하면서 축적된 생산 노하우를 통해 가급적 차기 중전차는 부품의 공용화가 필수였고 이에 따라 판터나 티거 전차와 공용할 수 있는 부품의 수를 최대한 늘리기로 했다.

 

 치열한 경쟁의 연속, 티거Ⅱ의 경합 

이렇듯 차기 중전차에 대한 기본적인 복안이 완성되자 독일 육군 병기국은 이제 설계와 생산을 담당할 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경합을 벌였다.

  이에 응한 것이 바로 포르쉐( Porsche )와 헨쉘( Henschel )로 포탑 설계 역시 크루프( Krupp )였으니 티거 전차 경합 때의 멤버가 다시 합류한 셈이다.

  다만 그 때와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티거 경합 때는 포르쉐사가 크루프사의 대리로 참가했던 반면 이번에는 아예 독립적인 주체로 출전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포르쉐사가 자체적으로 차체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전무했기 때문에 설사 포르쉐사의 설계안이 채택된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생산은 다른 업체에 위탁될 가능성이 높았고 그 1순위는 단연 크루프였다.

  여하튼 이렇게 3개 업체가 참여한 가운데 차기 중전차의 설계와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 중 헨쉘은 티거와 마찬가지로 75mm 게라트를 주포로 운용할 계획이었던 반면 포르쉐는 라인메탈사의 88mm FLAK 41 L/74 대공포를 거치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게라트 725는 진작에 육군 병기국에서 취소시킨 무장이었기 때문에 결국 차기 중전차의 주포는 88mm Flak 41로 결정되었다.

  무장이 통일되자 양사는 88mm Flak 41을 주무장으로 장착할 전차의 차체 설계에 돌입했지만 문제는 포탑 설계를 담당할 크루프사가 난색을 표했다는 점.

  크루프사는 자체 검토를 통해 88mm Flak 41을 탑재할 경우 포탑링의 직경이 2m를 가볍게 초과한다는 점에 경악했다.
  당시 육군 병기국이 요구한 사항은 전차의 전폭이 3.5m를 초과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는데 만약 이대로 88mm Flak 41을 탑재한다면 전차 자체의 설계가 곤란했다.

  따라서 헨쉘, 포르쉐, 크루프의 실무자들은 회의를 개최해 정신없는 설전을 벌이기는 했지만 결론은 하나로 일치했다.

  “Flak 41은 도저히 차기 전차의 무장으로 운용하기가 곤란합니다. 다른 대안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렇다면 티거에 장착한 kwk 36이 어떨지?”

  “그러면 병기국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미 수차례 실험을 통해 그 결과를 확인했지 않습니까? 만약 Flak 41을 그대로 장착했다가는 차체가 상부 하중을 견뎌내지 못할 겁니다.”

  “자, 자! 진정들 하시고. 일단 우리 3사의 결론은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병기국에 건의해서 Flak 41은 취소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 전선의 상황이 다급한 이 때에 우리끼리 말다툼이나 벌일 여유는 없으니까요.”

  이렇게 회의가 종료되고 3사의 실무자들은 육군 병기국에 티거 전차에 탑재된 kwk 36 L/56 전차포의 유용을 건의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육군 병기국은 크게 반발했고 안 그래도 소련군이 차기 전차를 내놓는다면 티거의 주포로는 격파가 불가능할 것이 명백한 상황이었으니 이 건의가 말도 안 된다는 그들의 입장이 무조건 억척스럽기만 한 것은 아닌 셈.

  여기에 육군 병기국은 어떻게든 주포는 88mm Flak 41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극도로 강조하며 못박아버렸고 다른 것은 몰라도 주포 문제만큼은 일체의 타협이 되지 않음을 천명했다.

  3사의 실무자들은 기가 막혔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더욱이 아돌프 히틀러 총통 역시 차기 중전차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수시로 개발 진행 상황을 확인함은 물론 크루프사에는 포탑 자체는 어떻게든 88mm Flak 41을 장착하면서도 우수한 방어력을 발휘할 것을 끈질기게 강조했다.

  여기에 어지간해선 히틀러 총통의 의견에 100% 동감하지 않던 육군조차 이 안에는 절대적인 지지를 표방했으니 헨쉘, 포르쉐, 크루프 3개사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입장에 처했다.

  이에 따라 포탑 설계를 담당한 크루프는 Flak 41이 도저히 안 된다면 아예 차기 중전차에 적합한 신형 전차포를 자체 제작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까짓 거 Flak 41에 뒤처지지 않는 위력만 발휘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해보지 뭐”

  크루프사의 설계자와 기술진은 88mm Flak 41을 기초로 전차에 탑재하기 적합한 크기를 갖추면서도 위력은 동등한 전차포의 설계에 착수했다.

  문제는 라인메탈사 역시 자사의 밥줄이 걸린 일이었기에 kwk 36 L/56과 마찬가지로 Flak 41을 단순히 전차포용으로 개조한 것을 개발 중이었지만.

  그러나 승패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갈렸다.

  라인메탈사로서는 크루프에 비해 비교적 단시간 내에 개발을 완료할 수 있었지만 육군 병기국 입장에서는 이미 3개사에서 탑재 곤란으로 못박은 이 전차포에 대한 집착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이에 크루프사의 신형 전차포에 대한 기대가 만발했고 마침내 1943년 2월 5일, 크루프사가 마침내 71구경장 전차포를 완성하자 독일 육군 병기국은 실험을 실시했고 결과에 흡족해하며 이 포를 차기 중전차의 주포로 채용했다.

 

88mm kwk 43/L71 주포의 위력

  바로 88mm kwk 43 L/71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88mm kwk 43 L/71은 Flak 41보다 구경장이 짧았지만 공격력은 큰 차이가 없었고 라인메탈사의 88mm Flak 41 L/74와 달리 대신 처음부터 전차포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장점이 많았다.

  우선 제한된 포탑 내부 공간에 설치하면서도 전차병들의 활동성이 보장되도록 약실을 최대한 짧게 제작하고 주퇴 복좌기의 실린더를 단축시키는 대신 부피를 확장시켰다.

  또한 전차포에 적합하도록 강선 구조도 변경하는 한편 포연을 강제 배출시키기 위한 공기 분사장치도 추가되었다.
  뿐만 아니라 짧아진 약실에 적합하게 포탄의 탄피 길이도 단축시킴에 따라 탄약고에 보다 많은 포탄을 적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포의 채용 덕분에 차기 중전차는 티거보다 더욱 막강한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는데 실제 사격 시험에서 kwk 43 L/71은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약 1,000m/s의 포구 초속으로 장갑판에 철갑탄을 발사하자 1,000m에서 165mm! 2,000m에서 130mm를 가볍게 관통해 소련군이 배치를 서두르고 있던 차기 중전차( 훗날의 IS-Ⅰ/Ⅱ "스탈린“ )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특히 우수한 광학 조준기인 TZF 9b와 정밀 포신 가공기술을 이용해 소련군으로서는 감히 시도하기조차 어려웠던 장거리 조준 사격까지 시도해볼 수 있었으니 탁 트인 동부전선의 광활한 대지나 개활지에서 조우할 경우 무적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대신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대가로 장전수는 티거의 포탄보다 20kg이 더 묵직한 철갑탄을 장전해야 하는 고행을 치러야 했지만.

[디펜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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