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거 2 전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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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거 2 전차 (3)
  • 이치헌 기자
  • 승인 2019.12.1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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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티거 II 전차의 성능은 좋았으나, 극악의 연비로 결국 버려진 전차

그다지 둔중하지 않은 기동성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독일 연방정부)

전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독일 중전차(Schwere Panzer)에 대한 항목 중 기동성과 신뢰성에 대한 편견은 의외로 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티거나 티거Ⅱ와 같은 경우 전선에 투입될 시 전투에서 손실하는 것 못잖게 고장으로 전차병들이 스스로 자폭시켜 유기한 차량이 적잖은 비율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부 제2차 세계대전 매니아들은 독일이 티거나 티거Ⅱ와 같이 육중하고 둔하며 생산성도 좋지 않은 전차를 생산하는 것보다 판터나 Ⅳ호 전차에 생산라인을 집중하는 것이 옳았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물론 이 주장이 아주 억척스러운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름대로 수긍할만한 부분이 있지만 과연 당시 독일인들도 이런 부분을 몰랐을까?

우선 판터나 Ⅳ호 전차가 티거/티거Ⅱ에 비해 생산성이 용이하고 단가 역시 저렴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시 독일의 상황을 보자면 왜 그들이( 그것도 원리원칙에 입각한 유럽 제일의 합리주의자이자 프로페셔널로 구성된 관료집단에서 ) 티거와 티거Ⅱ의 생산을 중단하지 않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전쟁이 프랑스 전역과 같이 단기전으로 끝났다면 독일 입장에서는 굳이 티거나 티거Ⅱ와 같이 덩치가 크고 묵직하며 생산성 및 신뢰성면에서 불리한 전차를 생산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전황은 그들의 희망사항과 달리 장기전으로 치달았고 여기에 북아프리카 전선과 동부전선이라는 새로운 전장까지 확장되면서 독일은 점차 한정된 자원과 인력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격전의 1943년에는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데다 소련 역시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대승 이후 압도적인 물량공세를 퍼붓기 시작하면서 독일이 동서 양방향에서 압박을 받던 시점이다.

이런 판국에 판터와 Ⅳ호 전차만으로 전투를 치른다는 것은 어찌보면 자살행위 그 자체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독일 연방정부)

판터는 분명 경사장갑을 도입하고 75mm kwk 42 L/70 전차포를 탑재해 우수한 방어력과 공격력, 그리고 티거/티거Ⅱ보다 우수한 기동력까지 갖춰 그야말로 현대 주력전차의 시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수한 전차였지만 단신으로 수십 대씩의 적 전차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괴물’은 아니었다.

 

티거 II 전차의 성능

“표범( Panther )”이라는 칭호가 말해주듯 맹수는 맹수이되 호랑이에 비할 바는 아닌 셈이다.

Ⅳ호 전차는 G형 이후로 주포를 43구경장과 48구경장으로 변경하며 공격력을 어느 정도 향상시켰지만 차체 크기의 한계 상 방어력은 이미 극한에 도달한 상태라 1943년 후반기부터는 사실상 주력의 지위를 판터에게 넘겨줘야 했다.

반면 티거와 티거Ⅱ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일단 중전차로 설계된 덕분에 처음부터 덩치 그 자체가 컸고 자연스레 대구경 주포와 두꺼운 장갑판을 두른 상태로 투입할 수 있었다.

게다가 판터와 Ⅳ호 전차와 달리 혼자서도 너끈하게 수십 대의 적 전차를 상대할 수 있음은 두 말하면 잔소리!

실례로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된 제501 중전차대대의 티거 극초기형은 단신으로 달려들어 미 제1 기갑사단의 전차 13대를 15분 만에 전멸시키는 괴력을 발휘했고 동부전선의 경우 광활한 대지와 원거리 전투라는 이점으로 인해 미하일 비트만 SS 중위, 헬무트 벤도르프 SS 중위, 오토 카리우스 중위, 하인츠 클링 SS 대위, 칼 브로만 SS 소위, 쿠르트 크니스펠 상사, 파울 에거 SS 상사, 칼 쾨르너 SS 상사, 프란츠 슈타우데거 SS 중사 등 수십~100대 단위의 전차와 자주포를 사냥한 에이스들이 국방군( Wehrmacht, 베어마흐트 )과 무장 친위대( Waffen SS, 바펜 SS )에서 줄줄이 배출되었다.

(사진: 디펜스 투데이)
(사진: 독일 연방정부)

또한 떨어지는 신뢰성 역시 당시 독일 육군 중전차대대의 가동률이 그렇게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준이었다.

실제 티거의 기동력은 동급의 중전차에 비해 우수한 편이었고(스탈린이 520마력 디젤엔진으로 시속 37km를 기록한 반면 티거는 더 묵직한 중량으로도 700마력 가솔린 엔진을 가동, 38km의 속도를 냈다) 티거Ⅱ 역시 마찬가지였다.

티거Ⅱ는 주행 테스트에서 시속 41.5km라는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기동력을 발휘했고 전장에서도 35~38km의 속도를 내는 등 예상 외로 빠른 속력을 내었다.

이는 헨쉘사의 기술자들이 기동력 향상에 적잖이 배려를 한 성과로 단순히 속도만 비약적으로 향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 컸다.

독일 육군도 이에 대해 동일한 견해를 피력했는데 시속 35km 정도면 중전차치고는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었고 이는 노획한 티거Ⅱ를 분석해본 소련과 연합군 관계자들이 인정한 부분이었다.

그러므로 기동력만큼은 티거보다 오히려 우수한 부분으로 당시 독일군의 운용이 그렇게 비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엔진에 무리가 가는 통에 고장률이 빈번, 애써 전장에 투입시켰다가 졸지에 전차병들이 자폭시키는 경우가 많았지만 일단 적 전차와 조우하면 두꺼운 장갑과 강력한 88mm kwk 43 L/71 전차포로 적 전차를 고철덩어리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독일군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힘들여서 전장까지 끌고 온 보상을 충분히 받았다.

특히 일반적으로 알려진 신뢰성 부분에서도 티거Ⅱ는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포르쉐형 포탑을 장착한 초기 생산차량 10여대를 제외하면 1944년 4월 생산분부터는 어느 정도 잔고장만 해결할 경우 판터나 Ⅳ호 전차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잘 굴러다녔다고 한다.

 

티거 II 전차의 극악 연비

오히려 티거Ⅱ가 가진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연비!

티거Ⅱ의 엔진은 판터와의 부품 공용화를 위해 마이바흐 HL230P30 700마력 가솔린을 장착했다.

문제는 중량 69.8톤의 거체를 움직이기에는 너무나도 벅찬 엔진이라는 점!

당연히 레오파르트Ⅱ에 탑재된 MTU-873 12기통 디젤엔진과 같은 고출력 제품을 탑재해야겠지만 당장 독일의 입장에서는 그런 엔진을 개발할 여유조차 없었다.

이런 엔진을 장착했음에도 티거Ⅱ가 가동되었다는 점은 독일인들의 기술력을 입증해주는 것이지만 이에 따른 대가가 너무나도 컸다.

당장 퍼먹는 연료의 양이 너무나도 많았는데 도로 주행 시 100km 이동에만 600리터의 연료가 소모되었고 들판이나 평원에서 주행하면 900리터에 달했다.

티거Ⅱ의 연료탱크에 주입되는 적재량이 860리터라는 점과 전장의 대부분이 포장도로가 아닌 비포장 도로 및 야지( 野地 )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연비가 얼마나 최악인지 알 수 있다(이건 여담이지만 730리터를 적재하는 판터의 경우 도로 상에서 100km 주행에 280리터, 야지에서는 700리터가 소요되었다고 한다. 문자 그대로 판터보다도 연비가 나쁜 셈이다 )

때문에 티거Ⅱ는 도로의 경우 110km, 야지의 경우 80km에서 연료를 가득 채워야했다.
갈수록 전선이 동서로 압박당하는데다 특히 연료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독일 육군은 이 대식가(大食家 )에게 질려버렸고 전선에 투입된 티거Ⅱ 상당수가 고장 못잖게 연료 보급을 받지 못한 사유로 전차병들에 의해 버려졌다.

[디펜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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